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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열린 ‘세살마을 조부모교육’에 참석한 조부모들이 자신을 안으며 “나는 소중하고 필요하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2. 유선봉씨가 손녀 연주를 안고 강의를 듣고 있다. 서울시와 가천대학교, 삼성생명이 함께 진행하는 세살마을 조부모교육은 지난 3월 동작구를 시작으로 11월까지 서울 모든 자치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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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살마을 조부모교육’ 현장
“하비, 하비.” 17개월짜리 연주의 대답에 강의실이 시끄러워졌다. 강사가 질문을 막 던진 참이었다. “젊은 세대는 안심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겁니다. 누가 봐주시면?” 제일 앞자리에 앉아 연주를 안고 있던 할머니 유선봉(60)씨가 “할아버지가 봐주신대”라고 통역하자 할머니들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한번 말문이 터진 연주는 계속 ‘하비’를 외쳤다. 결국 뒤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 김건인(63)씨가 와서 손녀를 데려갔다.
자녀 대신 영유아 돌보는 조부모 늘자자치구 돌아가며 체계적 양육법 교육
영유아 안전사고 대부분 집에서 발생
노인 위주 환경이 손자녀 위험할 수도 조부모 되는 건 기쁘면서도 힘든 일
괴로운 마음 삭이지 말고 표현해야
조부모가 건강해야 집안이 행복해져
“고생하는 나를 안아주고 사랑하세요”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세살마을 조부모교육’이 열렸다. 맞벌이하는 자녀를 대신해 영유아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들이 양육법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자리였다. 3주에 걸쳐 △조부모의 역할 △아이와 놀이 방법 △격대교육 방법 등을 배우게 된다. ‘세살마을’이란 명칭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영유아 양육의 중요성을 담고 있다. 유씨는 “과거 기억에만 의존해 손주를 키워선 안 될 것 같아 며느리가 읽는 양육법 책도 빌려서 읽고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도 ‘며느리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함께 왔다. 유씨는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중요무형문화재 태평무까지 이수한 무용가다. 느지막이 결혼해 서른살에 외아들을 얻었다. 인천에서 무용학원을 운영하던 때라 아들 양육은 시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평일에는 아들을 서울 신촌의 시부모 집에 보냈다가 주말에 인천으로 데려오는 식이었다. “제가 무용을 한다고 시어머니께서는 무거운 짐도 못 들게 하시고 여러 가지로 배려를 많이 해주셨죠. 그래서 며느리를 봤을 때 이제는 제 차례라고 생각했어요. 무역회사에 다니는 며느리에게 아이는 내가 키워줄 테니 너는 걱정 말고 낳기만 하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17개월 전에 손녀인 연주가 나오면서 시어머니까지 4대가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 아들네는 1층에, 부부와 시어머니는 3층에 살고 있다. 며느리는 연주가 최소한 5살이 될 때까지는 함께 살기를 원한다. 직장생활을 계속하기 위해서다. 이날 강사인 황환옥 경복대 영유아보육과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대학생과 중학생인 두 아들 모두 친정어머니가 길러주셔서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지 않았다면 저도 직장생활을 못했을 겁니다.” 황 교수가 아이를 돌보면서 뭐가 힘든지 묻자 여기저기서 “시간이 없다”, “피곤하다”, “체력이 달린다”, “매인다” 등 대답이 쏟아졌다. “그래요. 힘든 건 속으로 삭이지 말고 토해내셔야 해요. 숨긴 건 쌓이거든요. 당연히 기쁜 일이지만 어려운 것도 있다고 표현하셔야 해소가 됩니다.” 유씨도 옆에서 쫑알대는 연주를 보면 정말 예쁘지만, 양육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고되다. 하루종일 ‘안아달라’, ‘업어달라’ 온갖 청을 다 들어주고 나면 ‘골병든다’는 할머니들 말이 이해가 갔다. “제가 1주일에 두 번씩 문화센터에서 무용을 가르치는데 그때마다 사돈이 오셔서 3시간씩 봐주시니까 그나마 버텨요. 평생 무용을 한 몸이라 건강한 편인데도 체력이 달리더라고요. 남편이 가끔 연주랑 놀아주고, 기저귀도 갈아주며 도와주긴 해요. 그런데 제가 힘든 걸 몰라줘요. 하루는 괜히 서러워서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 남편한테 ‘나 아프고, 너무 힘들다’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걸 안 며느리가 사돈에게 부탁해서 하루종일 와주셨죠. 그런데 그렇게 하루 휴가를 즐기면서 연주를 안 보니 또 보고 싶더라고요.” 황 교수는 영유아의 안전사고가 가장 자주 일어나는 곳이 집이라고 했다. 영유아가 있는 집에선 가구 모서리에 보호대를 대고, 문 닫힘을 방지하는 받침대를 괴는 등 신경을 쓴다. 그러나 조부모 집에선 가구나 생활용품이 노인에게 맞춰져 있어서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허리가 아파서 압력밥솥을 방바닥에 두고 사용하시는 분들 많으시죠. 추가 울리고 김이 모락모락 일어나는 압력밥솥은 아이들에게 신기한 물건이라 화상 사고도 많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어르신께 편리한 게 손자녀에게는 위험할 수 있어요. ‘조부모 집에 가면 아이들이 다쳐서 온다’는 이야기가 다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어르신 집이 손자녀에게 안전한 장소인지 조금만 더 신경 써주세요.” 유씨네 집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함께 살고 있는 시어머니가 치매 3급이라 연주에게만 맞추기도 쉽지 않다. “강의를 듣고 보니 선풍기도 안전망을 안 씌웠네요. 계단도 위험할 것 같고…. 시어머니께서 다른 건 괜찮은데, 갑자기 고함을 칠 때가 있어요. 그래도 연주가 겁을 내지 않아 다행이에요. 오히려 증조할머니 머리를 쓰다듬고, 뽀뽀해줄 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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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선봉씨가 손녀 연주를 안고 강의를 듣고 있다. 서울시와 가천대학교, 삼성생명이 함께 진행하는 세살마을 조부모교육은 지난 3월 동작구를 시작으로 11월까지 서울 모든 자치구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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