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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8.25 20:32 수정 : 2015.08.26 13:59

1. 지난 13일 서울시 금천구 독산2동 보린주택 입주자인 김곤(왼쪽)씨와 송월석씨가 ‘이웃이 이웃을 돌보는 사람 사는 세상’이란 문구가 적힌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홀몸어르신 맞춤형 1호 ‘보린주택’


김곤(77)씨의 떠돌이 생활은 40여년 전인 1973년 시작됐다. 어머니의 장례식에 2년 전 집을 나갔던 아내가 나타났다. 할머니 손에서 자라던 3남매는 장례식이 끝나자 엄마를 따라나섰다. 홀로된 김씨는 용달차를 끌고 전국을 떠돌았다. 잠은 대부분 주차장에서 잤다. 8년 전부터는 알고 지내던 형님의 배려로 그의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허리와 다리가 아파 용달차 운전은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지난해 형님이 세상을 뜨면서 그 집에 계속 머물기도 곤란해졌다. 기초생활수급자를 위한 임대주택을 몇번이나 신청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가구원수 등으로 입주자가 선정되기 때문에 김씨처럼 홀몸인 경우는 불리했다.

독거노인에게 선정 불리한 임대주택
금천구서 맞춤형 공공 원룸 공급

승강기·안전손잡이·옥상텃밭 갖춰
방마다 욕실·주방·세탁기 등 완비
매주 수지침·웃음치료로 재미까지

입주자 15명 모두 아픈 사연 가득
지하 셋방 20년 만에 햇볕 들자 감동
살던 마을 벗어나니 아직은 외로워

막막하던 지난해 11월 서울시 금천구 시흥3동 주민센터의 사회복지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금천구(구청장 차성수)에서 홀몸어르신을 위한 임대주택인 ‘보린주택’을 지었다며 관심이 있냐고 물었다. 자신의 급한 사정을 딱 한번 하소연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독산2동에 있는 5층짜리 건물에 가보니 15~20㎡(5~6평)짜리 원룸이 15개가 있었다. 방마다 욕실, 싱크대, 드럼세탁기, 옷장이 있었다. 승강기와 안전손잡이, 옥상텃밭, 태양광 발전기까지 갖춘 홀몸어르신 맞춤형 원룸주택이었다. 월세도 6만원대, 관리비도 1만5000원 정도로 쪽방 수준이었다. 올해 초 보린주택에 입주한 김씨는 “40년 떠돌이 생활을 끝내고 나만의 보금자리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세상만사 편안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2. 같은 날 보린주택 ‘어울림방’에서 금천자원봉사센터 고려수지봉사단이 입주자 어르신들에게 침과 뜸을 놓고 있다. 보린주택은 금천구의 홀몸어르신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1호다. 2호점은 오는 10월 완공될 예정이다.
보린주택 1층에는 사랑방 노릇을 하는 ‘어울림방’이 있다. 금천자원봉사센터의 여러 동아리가 이곳에서 매주 건강·교양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고려수지봉사단이 어르신들에게 침과 뜸을 놓고 있었다. 조필형(81)씨는 목요일 수지침 시간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밤마다 다리가 저려서 잠을 못 잤는데 여기서 침과 뜸 등을 놓은 뒤로는 잘 자고 있다”고 말했다. 수지침 외에도 웃음치료, 우쿨렐레, 심리상담 등 봉사 동아리가 매주 보린주택을 찾는다. “웃음치료 시간에 선생님들을 따라 헛웃음이라도 계속 웃다 보면 참웃음이 나오데요. 신기해요. 이런 모임에 왔다 갔다 하면 하루가 금방 가요. 재미있어요.” 조씨는 올 초 보린주택에 입주하기 전까지 시흥2동 반지하 셋방에서 20년을 살았다. 낮에도 사람이 오면 등을 켤 수밖에 없을 정도로 캄캄했다. 이곳에 와서 무엇보다 좋은 것은 방에서 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늦잠을 자고 싶어도 환해서 더 잘 수가 없어요. 저녁에 옥상에 나가면 금천구 일대가 다 보여요. 거기에 앉아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입주해서 처음에는 서먹해서 예전 동네에 가서 놀다 왔어요. 3개월쯤 지나니까 이웃과 친해져서 밥도 같이 해 먹어요. 초복에는 모여서 삼겹살도 구워 먹었어요. 이제는 다른 데 안 가고 여기서만 지냅니다. 딴생각할 필요 없이 여기서 열심히 살면 되겠구나 싶어요.”

3층에 사는 송월석(71)씨는 방에 화장실이 있어 좋다고 한다. 그동안 전전한 셋방은 대부분 공동 화장실이었다. 날씨가 춥거나 몸이 아플 때는 화장실 가는 게 고역이었다. “여기서는 주인 눈치를 안 봐도 돼서 마음이 편한 건 있어요. 좁지만 있을 거 다 있으니 한번 들어오면 밖에 안 나가게 돼요. 집 주위가 조용해서 좋긴 한데 너무 언덕배기라 노인들이 걸어다니기 힘들어요. 공원과 재래시장이 가까이 없다는 점도 아쉬워요.”

송씨는 1987년 이혼한 뒤로 외톨이로 살아왔다. 자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따로 독립했다. “아이들은 1년에 한두번 찾아오는데, 지들도 살기 바쁘니까 내가 이해를 해야죠. 한때 우울증을 심하게 겪었어요. 지금도 속이 아픈데 갑자기 혼자된 분들은 몸도 마음도 많이 아플 겁니다. 그런 사람이 여기 많아요.”

그는 매일 독산4동으로 나선다. 40년을 살아 고향 같은 곳이다. 알고 지내는 가게를 찾아 마을을 한 바퀴 돌면 술자리도 생긴다. “여기 남자들은 다 살던 곳에 가서 놀다 오지 서로 어울리지 않아요. 술자리를 한번 만들까 생각은 하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같은 추억이 없으면 앉아서 할 이야기가 없거든요. 노인들은 오래 살던 동네를 멀리 벗어나도 문제입니다.”

김재관 금천구 자활주거팀장은 “입주자 30%는 독산2동에 계신 어르신으로 뽑았다”며 “홀몸어르신을 위한 맞춤형 원룸주택을 3년 안에 동마다 하나씩 10호점까지 지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홀몸어르신을 위한 임대주택은 금천구가 처음 만들었다. 지난 5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방문해 보린주택과 같은 ‘원룸형 안심공동주택’ 1000가구를 2018년까지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금천구는 보린주택 입주민의 의견을 지금 짓고 있는 2~4호점에 반영하고 있다. 2호점은 10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공동체형 임대주택인 ‘두레주택’도 비슷한 시기에 완공한다. 김 팀장은 “두레주택은 공동체 활동을 위해 큰 거실을 중심으로 작은 방들을 배치하고 공동 세탁실과 주방을 따로 둔 게 특징”이라며 “예상과 달리 어르신들의 반응이 원룸주택만 못해 앞으로 원룸주택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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