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봄 특수재봉기 활용교육을 받고 봉제공장에 취업한 이길례씨가 8월21일 서울 성북구 장위동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 교육장을 방문했다. 봉제업체들은 눈의 밝기나 체력의 문제 때문에 고령자 채용을 기피하지만, 이씨는 기술력과 성실성으로 교육생 중 가장 먼저 취업했다.
|
특수재봉기 취업 교육 현장
‘재봉일이라면 모든 노동 중에서 제일 고된 노동일세. 정신과 육체를 조금이라도 분리시키면 작업이 안 되네. 공사판 인부들은 육체적 힘을 요구하고 사무원은 정신적 노동을 요구하지만, 재봉사들은 양자를 다 요구하거든.’
1969년 서울 평화시장 재봉 노동자였던 고 전태일씨가 친구에게 쓴 편지의 일부다. 8월21일 성북구 장위동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 교육장에서도 20여명의 여성들이 정신과 육체를 일치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재봉틀 앞에 앉아 가득 쌓인 원단을 끊임없이 박음질했다. 누구는 셔츠의 어깨 쪽 주름을 잡았고, 어떤 이는 두 개의 원단을 맞대고 감침질했다. 고용노동부의 지원으로 무료로 제공되는 특수재봉기 활용교육을 받고 있었다.
교육생 중 최연장자인 주혜자(63)씨는 “의상실을 10여년 운영했고 동대문·남대문시장에서 의류 도매도 10여년 했지만, 특수재봉기는 가정용 재봉틀과는 완전히 다르더라. 실마다 장력이 달라서 배우지 않고는 바늘에 실을 꿰는 것도 어려워 손을 댈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지원 무료 기술교육에경력단절·베이비부머 여성 몰려
공업용 본봉·오바·삼봉기 숙련에
3개월도 부족…밤·주말에도 연습 눈·체력 우려해 고령자 기피했지만
60대도 실력·성실성으로 취업 성공
“매일 출근하니 쉴 때보다 활력 넘쳐”
기술 숙련되면 소규모 창업도 가능 공업용인 특수재봉기와 가정용은 성능과 힘에서 차이가 크다. 다양한 기능을 가진 가정용과 달리 특수재봉기는 특화된 기능에 따라 본봉기, 오바기, 삼봉기로 나뉜다. 본봉기는 직선으로 한 줄을 박고, 오바기는 두 줄을 박고 한 줄은 감고, 삼봉기는 세 줄을 박는다.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 노양호 회장은 “교육생을 뽑을 때부터 본봉사·오바사·삼봉사 과정을 따로 뽑는데, 취업이 목적인 교육이라 교육생 절반이 취업이 가장 잘되는 오바사 과정을 배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봄 봉제공장에 취업한 이길례(64)씨도 여기서 오바사 과정을 배웠다. “결혼 전에 장갑공장에서 4년 일했고 중년에 이불업체에서 10년 가까이 봉제 일을 했어요. 그때는 제대로 된 교육이란 게 없이 선배들에게 알음알음 배워 본봉기를 다뤘죠. 여기 와서 오바기를 처음 배웠는데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어 좋았어요. 이론뿐만 아니라 바늘대를 어느 선에 맞춰야 실이 꼬이지 않는지 구체적인 기술까지 배워 현장에서도 유용하게 써먹고 있어요. 무료로 교육도 해주고 취업도 알선해주니 얼마나 좋아요.”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 김제경 사무국장은 “교육 기수별로 20명씩 모집하는데 지원자가 두배 이상 몰린다. 교육 효과와 취업 가능성이 큰 분들을 주로 뽑는다. 고령자는 눈의 밝기나 체력의 문제 때문에 업체에서 채용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길례 선생님은 면접 때부터 이걸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경력도 많아 우려에도 불구하고 뽑혔다. 결과적으로 그 기수에서 가장 먼저 취업에 성공했다. 교육 도중 아르바이트를 나간 공장에서 기술과 성실성을 높이 사 교육이 끝나기도 전에 채용됐다. 나이에 대한 편견을 능력으로 깬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평일에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하고 토요일에는 오전에 일한다. 4개월째 일하고 있지만 체력은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취업하기 전까지 7년 정도 집에서 쉬었는데 그때가 더 나태하고 몸도 안 좋았어요. 매일 규칙적으로 출근하니까 오히려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 같아요. 월급은 130만원 정도 받고 있습니다. 여기 교육 마치면 대부분 그 정도에서 시작해요. 제가 나이가 많고 처음 하는 일이라 취업한 것만으로도 고맙죠. 처음에 사장님께서 급여 이야기하실 때도 얼마 달라고 하지 않고 제가 일하는 것 보고 달라고 했습니다. 봉제업계는 보통 6개월마다 월급을 조정하니까 앞으로 나아지겠죠. 숙련된 기술자는 200만원 넘어요.” 지퍼 다는 법을 연습하고 있던 주씨는 “기술을 충분히 터득하면 창업할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나도 나중에 수선집을 창업할 계획”이라며 반가워했다. 김제경 사무국장은 “수선집보다는 봉제공장이 낫다. 집에서 혼자서 창업하는 것도 가능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 소규모 공장을 할 수도 있다. 우선 공장에 취업한 뒤 숙련되면 봉제공장을 창업하라”고 권했다. 하루 4시간씩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석달 동안 배우는 교육과정이지만 교육생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제경 사무국장은 “봉제 경력이 전혀 없는 분들은 3개월 교육을 다 받아도 공장에 가서 바로 적응하기 쉽지 않다. 공장에서는 재봉기를 다룰 줄 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충분한 생산성을 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익숙할 때까지 반복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이 끝난 뒤에도 남아서 연습을 하고 토요일에도 연습하러 오는 교육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씨는 “3개월이란 기간이 숙련된 기술자로 취업하기엔 조금 짧기는 하다. 동기들 보면 경력이 단절된 주부들이 많고 봉제 일을 처음 배우는 분들도 있다. 그래도 80%는 취업에 성공한 것 같다. 마침 오늘 저녁에 동기 모임이 있다. 취업한 봉제업체 대부분이 이 근처라 여기서 모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장위·석관동 일대에만 협회 소속 회원사가 1900곳이 넘는다. 대부분 직원이 10명 미만인 영세업체다. 노양호 회장은 “25년 전만 해도 이쪽에 봉제공장이 별로 없었다. 회현이나 동대문 쪽이 계속 개발되다 보니 공장들이 점점 변두리 쪽으로 밀려나고 있다. 동대문과 가깝고 임대료가 저렴한 이 지역에 몰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