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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06 20:06 수정 : 2015.10.07 10:01

지난 8월20일 스웨덴 스톡홀름 공공도서관 직원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파일(대체교재) 실행을 시연하고 있다. 장애청년드림팀 제공

대체교재 제작까지 보통 3~4개월
학생들 “부모님이 직접 만들어줘”
복지관·도서관 등 제작처 중구난방
출판사는 디지털 파일 제공 소극적

스웨덴선 정부가 직접 나서 관리
출간되는 책 25%가 대체교재로

책이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정작 필요한 책을 제때 구하기 어려운 이들이 있다. 1287명(2013년 기준)의 시각장애 대학생들은 특히 그렇다. 어렵게 대학 문턱을 넘어도 ‘읽을 수 있는’ 교재를 얻으려면 지난한 투쟁이 필요한 현실 탓이다. 시각장애 대학생들에겐 점자·음성 파일로 변환된 대체 교재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체 교재 제작을 신청한 뒤 실제 교재를 받을 때쯤엔, 이미 학기 중반이 되거나 막바지에 이른 경우도 있다.

충북에 있는 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시각장애인 김아무개(20)씨는 학기 초만 되면 발을 동동 구른다. 교수가 학기 시작 한두달 전에 교재를 알려주지만 이를 대체교재로 바꾸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김씨는 “학교나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대체교재 제작을 의뢰하면 통상 3~4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직접 교재를 ‘제작’하기도 한다. 또다른 시각장애 대학생 한아무개(19)씨는 “이런 현실을 모르는 교수님들이 날 게으르다고 생각할 것 같아서 스캐너를 사서 부모님께서 일일이 스캔해 파일로 만든다”고 했다. 선배들로부터 이미 제작된 교재 파일을 받기도 하지만, 개정판이 나오면 무용지물이 되기도 한다.

정부가 현실을 전혀 모르거나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시각장애인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국립장애인도서관은 대체교재 제작에 한해 4억원의 예산을 쓴다. 그러나 이런 요구를 수용하기엔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통상 장애인도서관에서 대체교재를 만드는 데 걸리는 기간은 점자책은 124일, 음성파일은 46일이다. 복잡한 표나 그림 등이 많으면 200일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시각장애인들의 이런 고충을 덜어줄 방안 가운데 하나가 교재를 제작한 출판사가 디지털 파일을 장애인도서관에 건네주는 것이다. 실제 이런 내용의 도서관법이 있지만 신청 대비 제출 비율은 50%에 그친다. 저작권법도 장애인한테는 비영리 목적일 경우 저작물을 배포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그런데도 출판사들이 버티는 이유는 ‘디지털 파일 유출’을 명분으로 삼지만 실제로는 ‘안 줘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디지털 파일 제출을 거부할 경우 출판사에 과태료 등을 부과하는 도서관법 개정안이 지난 2월 발의됐으나 법안 처리는 지지부진하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전세계에서 장애인 학습권이 가장 폭넓게 보장되는 스웨덴은 정부가 직접 시각장애인 대체교재 제작의 컨트롤타워를 자처한다. 지난 8월 한국장애인재활협회와 신한금융그룹이 주관한 ‘장애청년드림팀’ 프로그램을 통해 스웨덴을 찾은 시각장애 대학생들과의 만남에서 스웨덴 문화부 산하의 ‘접근가능한 미디어를 위한 공공기관’(MTM)의 미아 스뉘그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디렉터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똑같은 정보접근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기관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엠티엠은 3곳의 전문 출판사와 위탁계약을 맺고 대체교재 제작을 총괄한다. 엠티엠은 스웨덴에서 매년 출간되는 책의 25%를 점자·음성파일 등 대체교재로 만든다. 복지관·도서관 등으로 공급처가 중구난방이고 전적으로 자원봉사자의 노동에 의존적인 한국 시스템과 대조적이다. 한국은 매해 출간되는 책의 2~5%만 대체교재로 제작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출판사들이 우려하는 유출 문제에 대해서 스웨덴은 암호화로 대응하고 있었다. 스뉘그는 “처음엔 저작권을 이유로 디지털 파일 제출에 반발이 심한 출판사들이 있었지만 2005년 저작권법을 바꿔 출판사들이 이를 거부할 수 없게 했다”며 “파일 유출을 막으려 학생들한테 직접 텍스트 파일을 제공하지 않고 특정한 암호화된 형식의 파일을 받아서 타인과 공유할 수 없도록 조처한다. 대신 음성파일을 애플리케이션으로도 실행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각장애 대학생 임동준(22)씨는 “유출 문제로 교재 제작이 쉽지 않았고, 똑같은 책이 제각각 다른 곳에서 비효율적으로 중복 제작되기도 했다”며 “스웨덴처럼 중앙기관에서 제작을 관리하고 암호화한다면 훨씬 더 시각장애 학생들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스톡홀름/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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