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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23 19:49 수정 : 2015.11.25 14:00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13살 이서연양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서 주사를 맞으면서 나눔꽃에서 선물한 캐릭터 인형을 보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2015 나눔꽃 캠페인

이서연(가명)양은 13살, 포켓몬스터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을 함께 좋아할 수 있는 나이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진료실에서 약병을 단 채 앉아 있던 서연이는 피카추, 냐옹이 같은 포켓몬스터 캐릭터 인형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도 좋아하는 책을 묻는 질문에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답했다. 사춘기 소녀 서연이가 백혈병과 싸운 지 9개월이 넘었다. 큰 고비는 넘겼지만 앞으로 2~3년 정도의 치료가 더 남았다.

치료 확률 40%에 불과한 고위험군
조혈모세포 이식뒤 부작용 나타나
재발·합병증 우려 2~3년 치료해야

실직 아버지 대신 엄마가 생계 책임
여기저기 빌려 쌓인 빚만 5천만원
정부 지원 없는데 실비보험도 만기

의료진은 “완치 가능” 장담하지만
가족들 치료비·생계비 걱정 태산

지난 3월2일, 중학교에 입학하던 날 서연이는 학교 계단을 오르다 주저앉았다. 입학식 내내 헛구역질이 치밀었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백혈구와 적혈구, 혈소판을 만드는 조혈모세포에 암이 생긴 것이라고 했다. 서연양의 어머니 김현숙(가명·46)씨는 “‘수백만명 가운데 서너명이라는데 설마…’ 하며, 감기 증상이려니 생각했다. 병원에 다녀오고 나서도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미용실에 들러 반곱슬인 서연이 머리를 곱게 펴주고 머리핀도 사줬는데 친구들한테 그 예쁜 모습을 딱 하루 보여주고 다음날 바로 입원을 했다”고 말했다. 서연이의 달라진 머리 스타일을 보며 “서연이, 대박!”을 외치던 친구들은 각자 학교생활에 적응해갔고, 서연이는 입원해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서연이는 또래 친구들이 그렇듯 머리카락 꾸미기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 고운 머리카락은 2주 만에 독한 약기운을 못 이기고 뽑혀나가기 시작했다.

서연이는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가운데서도 고위험군에 속했다. 담당의사인 강형진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백혈병 가운데서도 치료 확률이 40%에 불과할 정도로 예후가 좋지 않은 축에 속했다. 고위험군이었던 만큼 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했고, 조혈모 세포를 이식해 지금은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힘든 과정이었을 텐데 서연이가 착하게 버텨줬다”고 덧붙였다.

‘착하게 버텼’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단계마다 서연이의 몸에서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1차 항암치료 과정에서는 서연이의 간 수치가 정상인의 30배 수준으로 치솟았다. 간 해독제를 먹고 금식하며 항암치료를 멈춰야 했다. 치료를 겪으며 43㎏이었던 서연이의 몸무게는 33㎏까지 줄었다. 다리 근육이 약해져 걷기가 힘들어지자 휠체어를 탔다. 2차 항암치료를 받다가는 뇌졸중 증세가 나타나 팔이 제 뜻대로 움직이지 않기도 했다. 하루치를 모으면 한줌이나 되는 약을 한 시간 간격으로 먹어야 하는 매일매일이 반복됐다. 김씨는 “가장 가슴 아픈 순간은 부작용을 알면서도 자는 아이를 깨워서 약을 먹여야 할 때였다”고 했다.

그사이 엄마의 마음에도 병이 깃들었다. 김씨는 지난 5월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아이의 고통이 내 탓’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족 부양을 책임지는 워킹맘이었던 김씨는 “일을 하느라 주말에는 잔소리만 하는 나쁜 엄마였다. 내가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아이가 고통을 겪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괴롭다”고 했다. 김씨는 서연이가 산을 오르며 힘들다고 했던 일, 침대에 자주 눕던 일 등 하나하나를 되짚으며 “그때 내가 세심하게 아이가 힘든 걸 눈치채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결국 김씨도 지난 7월부터는 일을 쉬기로 했다. 아버지도 일을 하지 않는 상황이어서 가족의 소득은 김씨가 휴직한 뒤 받는 월급 100여만원이 전부다.

또래 친구들의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서연이는 부럽다. ‘반톡’(반 친구들 카카오톡)을 보다가도 걸핏하면 속상해졌다. 서연이는 “친구들의 생일 파티 얘기, 자기들끼리 겪은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나는 참여하지 못하니까 화가 난다. 그런 날이면 화장실에 가서 엄마와 울었다”고 했다. 면역이 약한 서연이는 적어도 3년 동안은 학교로 돌아가지 못한다. 이틀 입은 교복만 방에 그대로 걸려 있다.

지난 10월, 서연이는 친오빠에게 조혈모세포를 이식받고 퇴원했지만 치료는 앞으로도 2~3년 동안 이어진다. 언제 병이 재발할지, 합병증이 생길지 알 수 없어서다. 서연이는 현재 오빠에게 이식받은 조혈모세포에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면역력을 강제로 줄여놓은 상태다. 면역력이 약해진 서연이의 몸은 하찮은 병균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서연이는 최근에도 갑자기 드세진 바이러스 반응을 진정시키기 위해 매일 병원을 찾고 있다. 병원에 한번 올 때마다 적게는 10만원, 많게는 70만~80만원 정도가 든다. 병원 쪽에서는 “앞으로 3000만원 정도의 치료비용이 더 들 수 있다”고 했다.

서연이가 이식 수술을 마친 뒤에야 김씨는 돈 문제를 깨달았다. 김씨는 “서연이가 아프고 나서 급한 마음에 이래저래 돈을 빌려썼다. 그렇게 쌓인 빚이 지난해 5000만원 정도가 됐고, 이자만 한 달에 60만원 이상을 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서연이 어머니가 직장이 있는 상황이라 이렇다 할 정부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도움이 됐던 민간 보험회사의 실비보험 보장기간은 내년 3월 끝난다. 김씨는 “치료비 문제가 가장 심각하지만, 큰아이 부양도 걱정이다. 지금은 가족 경제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고 했다. 강 교수는 “남은 치료만 잘 버티면 완치가 가능한 아이인데 치료비 문제가 걸려 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연이의 지금 소원은 “몸이 나아 친구들이랑 분식집 떡볶이를 먹는 것”이다. 면역이 약한 서연이는 아직 엄마가 직접 만든 음식만 먹을 수 있다. “언어감각이 좋은 문과형 체질이었다”던 서연이의 꿈은 투병을 거치며 어느새 의사로 바뀌어 있었다. 서연이는 “특히 소아과 의사가 돼서 나 같은 아이들을 치료해 주고 싶다”고 수줍게 꿈을 이야기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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