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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1.11 17:16 수정 : 2016.01.14 09:46

지난해 10월3일 ‘지뢰피해자 지원에 관한 특별법’과 관련해 민간인 지뢰피해자인 이경옥 목사의 사연(관련기사▶‘지뢰받이’ 이경옥)을 보도한 뒤, 11월 후속 보도를 위해 김종수씨를 만났다. 앞으로도 민간인 지뢰피해자의 사연을 계속해서 취재해 알릴 예정이다.

민간인 지뢰피해자 김종수씨가 2015년 11월18일 저녁 서울 강남구 자신의 집에서 화장실을 향해 기어가고 있다. 김씨는 이날 화장실에서 나와 방으로 되돌아오며 라고 “이젠 무릎이 아파서 깡총 걸음을 할 수 없어”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종수(55)씨가 자신의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왼 다리와 양팔로 바닥을 기어 화장실로 향했다. 김씨는 이를 지켜보던 기자를 향해 멋쩍게 웃으며 “옛날에는 깡충 걸음으로 갔는데, 나이 먹으니까 무릎이 고장 나서 더는 그럴 수 없네”라고 말했다.

1976년 11월30일 16살이던 김종수씨는 2살 터울의 셋째 형 김용수 그리고 마을 친구 4명과 땔감용 나무를 구하기 위해 눈으로 덮인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뒷동산에 올랐다. 마을과 주변의 나지막한 산은 이미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김씨와 일행이 산을 오르고 1시간 뒤 큰 폭발소리가 마을을 뒤흔들었다. 김씨는 늘 오르던 그곳에서 지뢰를 밟았다.

김종수씨가 2015년 11월17일 오전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지뢰로 잘린 오른다리를 꺼내보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다리를 잃은 김씨는 형들의 구박 속에 1년 동안 집에 있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을 두고 볼 수 없었다. 1978년 고향을 떠나 서울의 한 플라스틱 금형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1주일도 되지 않아 사장은 김씨에게 나가달라고 했다. 장애인이 일터에 앉아있는 것 자체가 혐오스럽다는 동료의 불평이 이유였다. 김씨는 헤어드라이기 조립공장으로 옮겼다.

여기서도 김씨는 ‘왕따’였다. ‘병신새끼’ 등 김씨를 향한 욕설이 계속됐다. 공장 동료는 회식자리에서 술만 마시면 김씨의 뒤통수를 때리며 괴롭혔다. 하지만, 공장을 떠나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아 일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1980년 당시 김씨의 기본급은 3만 원, 야근을 하면 수당으로 2만 원을 더 받았다. 밥값을 아껴봐도 1만 원 저축하기가 쉽지 않았다. 힘들게 저축한 돈으로 30만 원짜리 의족을 샀다. 처음 1년은 의족에 적응하지 못해 절단 부위가 짓무르고 찢어져 피가 났다. 목발에서 벗어난 김씨의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김종수씨가 2015년 11월17일 오전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에서 피부과 진료를 받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종수씨가 2015년 11월17일 오전 서울 강동구 중앙보훈병원 앞 한 약국에서 피부약을 받아 나오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계속되는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앉아서 하는 일을 찾아야 했다. 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작은 양화점에서 숙식하며 일을 배운 김씨는 1983년 서울 명동에 위치한 구두공장에 취업했다. 앉아서 구두를 만드는 일이었다. 1987년에는 같이 일하던 동료의 조카인 이미숙(50)씨를 만나 결혼했다. 다리가 불편한 남편의 다리가 돼 주었다.

“우리 집사람은 천사야. 너무 착해서 애들이 해야 할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는 바람에 자식새끼들이 지들 할 일 하나 제대로 못 한다니까.”

김씨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직장생활 하는 딸 둘과 중학생 아들이 있는데, 다리 때문에 넉넉하게 돈벌이를 할 수 없었어. 아내와 자식들 모두 늘 부족한 가정형편에서 살게 했다.”라며 자책했다. 가족을 향해 김씨는 늘 미안함이 가득했다.

김종수씨(오른쪽)가 2015년 11월17일 오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한 실내배드민턴장에서 시합을 한 뒤 자리에 앉아 쉬고 있다. 왼쪽무릎 파열과 ‘추간판 탈출증’ 등의 후유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씨는 근육강화를 위해 운동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종수씨가 2015년 11월17일 오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한 실내배드민턴장에서 복식 경기를 벌이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씨가 운영하고 있는 서울 관악구의 구둣방에 함께 들렀다. 시간이 꽤 흘러도 손님이 오지 않았다. 김씨는 “요 몇 년 사이 수입은 줄고 빚만 늘었어. 여자구두 뒷 보조굽을 고치면 3000원을 받는데, 그런 손님이 하루에 10명 정도밖에 안 와. 다행히 민간인 지뢰피해자를 지원하는 영리사회단체 ‘평화나눔회’를 통해 내 형편을 안 대학생들이 날 돕겠다고 한 달 전 인터넷에 온라인 매장을 만들어줬어. 벌써 열댓 명이 다녀갔어”라고 말했다.

김종수씨가 2015년 11월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주차하며 아들과 대화하고 있다. 김씨는 이날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두 딸과 아들에게 해준게 없다. 그래도 자식들이 착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뢰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김씨는 사고 뒤 후유장애로 막대한 의료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김씨는 왼쪽 무릎인대 파열과 ‘추간판 탈출증’으로 수술을 했고, 절단했던 오른쪽 다리를 재수술해야 했다. 수술비로 만도 5000만 원가량을 썼다는 김씨는 “입원을 하고 있으니 구둣방으로 일을 나갈 수 없잖아. 하루 벌어서 하루 사는 건데, 모아놓은 돈도 없고 다 빚으로 살 수밖에…”라고 말했다.

김종수씨가 2015년 11월17일 오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자신의 구둣방에서 구두를 닦고 있다. 요 몇 년 사이 줄어든 수입으로 빚이 늘었다는 김씨는 손님을 기다리며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김종수씨가 2015년 11월17일 오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자신의 구둣방 출입구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수술비용은 김씨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최근에는 의료비로 고민하던 중 무이자 대출을 해준다는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에 속아 2000만 원가량을 날렸다. 결국, 평생 집안일만 하던 아내 이씨가 생계를 위해 5달 전 요양병원 청소일을 시작했다.

아내가 허드렛일을 하는 게 마음 쓰인다는 김씨는 “민간인 지뢰피해자 특별법을 재개정하면 2000만 원을 준다는데 그것 가지고 무엇을 하라고 그 모양으로 개정한다는 건지. 우리 형도 고향에서 지뢰인 줄 모르고 만지다가 그게 터져서 오른쪽 눈 실명했지. 지금 어려운 사람들한테 돈 몇 푼으로 장난치고 있는 거야. 위로금 받으면 빚 먼저 갚고 아내 청소일 그만두게 할 거야”라고 말하며 고개를 떨궜다.

김종수씨가 2015년 11월 17일 오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자신의 구둣방에서 장사를 마치고 배드민턴장을 향해 오토바이를 몰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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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광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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