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지키는 그물망 짜자
③ 돈도 사람도 없다
아동학대 전문 상담원 ㄱ씨는 서울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에서 일하던 지난 2013년 아빠가 지적장애가 있는 중학생 딸을 성추행한 ‘성학대 신고’를 받아 처리했다. 피해 학생의 효력있는 진술녹화를 위해 속기사와 진술조력인, 의사를 섭외하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피해 학생에 대한 보호와 각종 치료는 물론 피해 학생과 똑같이 지적장애가 있는 엄마와 그 동생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수소문하고 인계하는 일, 피해 학생과 그 동생이 다니던 학교에 결석 사유를 설명하는 일,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신청 등 수백통의 전화와 수차례 방문이 필요한 일 모두 ㄱ씨 혼자만의 몫이었다. ㄱ씨가 처리해야 할 또다른 피해 사례만 60여건에 달했다. ㄱ씨는 “하루에 한번 전화 한 통화라도 해서 피해 사례를 관리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내가 못 챙기는 사이 또 누가 당하지는 않을까, 학대를 못 막으면 어쩌나 그게 제일 큰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어린아이가 국가의 아동보호체계를 벗어나 부모의 학대로 사망에 이르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아동학대 사건을 전담하는 아보전 상담원의 ‘혹사’로 지탱하고 있는 열악한 아동학대 방지 인프라가 ‘누수’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구 1000명당 아동학대 발견율 상·하위 3개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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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신고 건수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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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상담인력 364명에 불과
아동수 비슷한 미 캘리포니아의 7.3% 상담원 1인 평균 66.5건 맡아
학대아동 보호체계에 구멍 뚫려
1년이상 관리되는 사례는 0.4%뿐 ■ 신고 사례 처리 급급 지난 2005년 신고 접수된 학대 가정을 방문했다가 가해 부모에게 폭행당해 상담원이 뇌사에 빠지는 일이 있은 뒤 상담원들의 현장조사는 2인1조가 원칙이다. 자기가 맡은 사례가 아니어도 동료 상담원의 현장조사에 동행하는 일은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2014년 9월 특례법 시행 이후엔 새로 부과된 업무도 많다. 법 시행 이전 1400건에 불과했던 ‘경찰 동행’ 비율은 시행 이후 1만940건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지역아보전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인 ‘신고의무자 교육’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한 지역아보전 관장은 “외국은 신고의무자의 신고율이 70%인데 우리는 아직도 30%를 조금 넘어 민감성을 높이는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인력이 부족하니 보건복지부에서 아예 ‘몇백명 수준의 교육은 가도 몇십명 수준의 교육은 지양하라’는 공문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학대아동 보호체계에 늘 ‘구멍’이 생길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피해 사례의 58.9%는 관리 기간이 6개월 정도이며, 1년 이상 관리되는 사례는 0.4%에 그치고 있다. 이봉주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사례 관리 기간을 일률적으로 정하기는 힘들지만 지금 인력 구조로는 사례 관리 강도나 사례 관리를 통한 전문적인 서비스 제공·연결이 힘든 상황”이라며 “조기종결 하는 경우도 많은데, 사실상 재학대 위험도가 상당히 높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재학대 사례의 63.4%는 아동학대 사례 관리가 종결된 지 1년이 지난 이후에 발생한다. 2014년의 경우 종결 뒤 사후관리 중인 피해아동(3만3843회)에게 지원된 서비스는 진행 중인 사례의 피해아동에게 지원된 서비스(30만1581회)의 1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경기도의 한 지역아보전 관장은 “10년 경력자도 사례 100개를 관리하는 상황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며 “사례 하나를 오래 들여다봐야 하는데, 지금은 1시간 상담해야 할 것도 10분에 마쳐야만 다른 사례 관리가 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금 형태로 두면 신고되지 않은 학대 사례에 대한 예방은 거의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진명선 엄지원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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