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발의 ‘종로 행복 조례안’ 부결됐지만…‘함께 행복’ 찾아다닌 지난 1년 행복했어요

서울 종로구 주민들로 구성된 ‘종로행복드림 이끄미’참여 주민들이 지난해 12월7일 ‘종로행복조례안’ 주민발의를 위해 서울 종로구 종로 노인 종합복지관에서 구민들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고있다. 종로행복드림이끄미 제공

종로 주민들 신선한 도전

주민 30여명 스스로 조직 꾸려
발품팔아 뜻 모으고 명문화
5000여명 서명해 구의회 넘겨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을 터”

“집에서 밥만 하던 엄마가 갑자기 여기저기 행복을 묻고 다니는 걸 보고 서른 넘은 아들이 어느날 ‘진짜 멋있다’는 거예요. 조례안이 부결됐지만 실패한 것 아니에요. 저는 행복했고 앞으로도 포기 안 할 거예요.”

　서울 종로구 숭인동 주민 유정옥(57)씨는 지난 23일 종로구의회의 ‘종로 행복 조례안’ 심의 과정을 방청했다. 종로행복조례안은 유씨 등 주민 30여명이 ‘종로행복드림 이끄미’(이끄미)를 꾸린 뒤 손수 만들어 청구한 ‘주민발의 조례’다. “종로구 주민들이 다 운영하면 의원이 뭐 필요하고 구청장이 뭐 필요합니까” “행복이 다 다른데 무슨 기준을 정해요.” 구의회 의원들의 싸늘한 반응 속에 종로행복조례안은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부결됐다. 유씨는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구의원들이 실망스럽고 서럽다”고 말했다.

　유씨 등은 지난해 3월 종로구청이 이끄미 구성을 제안하자 ‘주민들 스스로 행복의 의미를 묻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조례를 만들어보자’고 뭉쳤다. 이끄미에는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다 나왔다’는 주부, ‘아이들의 행복을 찾아주고 싶다’는 어린이집 교사, ‘시간을 쪼개서라도 무언가 해보겠다’는 직장인 등 다양한 이들이 참여했다. 플로리스트로 활동하며 두 아이를 혼자서 키운다는 이숙희(45)씨는 “먹고사는 게 힘들지만 이웃과 함께가 아니면 나도 행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이끄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주민들이 만든 행복조례안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적 가치’ ‘전통문화재 보존과 지속가능한 발전’ ‘마을마다의 다양성 존중’ ‘주민 참여’ 등을 기본 원칙으로 삼았다. 종로구에 살며 ‘좋아하는 사람이랑 고궁을 걸을 때 행복하다’거나 ‘특색있는 마을이라서 행복하다’는 등 6개월 동안 직접 듣고 청취한 종로구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정한 것이다. 또 조례안에는 일반 주민 80%로 ‘행복포럼’을 구성해, 구청이 정책을 입안, 집행할 때 ‘행복영향평가’를 실시하고, 종로구만의 ‘행복지표’를 만들어 발표할 계획도 담았다. “구청이 정하고 구민은 받기만 하는 행복(정책)이 아니라, 마을 단위에서 행복의 의미를 정하고 구정에 지속적으로 반영하자는 것이 조례안의 핵심 내용”이라는 게 이끄미 단장을 맡은 배안용 종로구 서울교회 목사 얘기다.

　조례안을 들고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 동안 이끄미들은 주민조례 청구에 필요한 3395명 이상의 서명을 받기 위해 구민회관이나 복지관, 구 행사가 열리는 장소 등을 열심히 다녔다. 구민들의 호응은 생각보다 컸다고 한다. 유씨는 “이런 활동이 낯설어서 처음에는 쭈뼛거렸는데 한번 입이 터지니까 되더라”며 “자기가 생각하는 행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나, 이거 꼭 통과시키자는 이웃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다”고 했다. 이씨도 “꼭 서명을 받아낸다는 것보다 함께 행복해지는 게 뭔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신났다. 오죽하면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고서도 퇴원하자마자 서명 용지를 들고 거리로 나갔다”고 했다. 이렇게 5342명의 서명을 받았다. 행복조례안은 구의원들의 냉소 속에 단 한 차례 심의로 부결됐지만, 참여 주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 조례’를 계속 실천하겠다고 말한다. 이씨는 “플로리스트인 장기를 살려 돈의동 쪽방촌에 꽃을 심어볼 계획”이고, 유씨는 “계속해서 이웃들에게 행복의 조건을 물어볼 생각”이다. 배 목사는 “조례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방준호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