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토요판팀에서 일하다 지난봄 법조팀으로 옮겨간 허재현 기자입니다. 토요판에서 제가 안 보여서 아쉬우셨나요? (제발 ‘네’라고 말해줘요) 법조팀은 제가 자원해서 갔습니다. 그간 저는 주로 출입처를 두지 않은 거리형 기자였습니다. 스스로 ‘길거리 저널리즘’이라고 지칭했습니다. 대체로는 거리의 한숨과 눈물들을 세상에 전하는 일입니다. 반면, 법을 다루는 공간은 아무래도 거리에 비해 보수적입니다. 제가 보수적이 되려 뛰어든 건 아니고, 보수적인 이들의 세계를 살펴보기 위함입니다. 거리의 눈물들을 법은 어떻게 지켜보는지 여러분께 전하겠습니다. 새로운 한겨레 법조기사를 기대해주세요. 이번주 저는 지난 4월 중국 저장성의 북한 식당을 탈출한 북한이탈주민들이 오는 21일 법정에 서게 됐다는 기사를 전했습니다. 서울지방법원은 이들이 정말 자유의사로 남한에 온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법률 용어로는, 인신보호구제심사청구 재판인데 본인 의사에 반해 시설에 구금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건을 어떻게 지켜보고 계십니까? 어떤 분들은 이 심사를 청구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이를 상세히 보도하는 저 같은 기자에게 “북한을 대변하려는 것이냐”고 묻더군요.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국정원이 탈북자들을 납치했다고 하는 북한 주장의 진위 여부를 가리려는 겁니다.’ 이들이 정말 남한에 체류하겠다면 환영해주고 정착을 도와야죠. 다만, 본인 의사에 반해 끌려간 것이라 하는 북한의 부모들이 있으니 당사자 얘기 정도는 확인을 직접 해보자는 취지입니다. 저는 이번 인신보호구제심사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국정원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내에 머물고 있는 탈북자가 무조건 남한 귀화를 원하고 있을 거라고 판단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사람인지라 그렇게 감정이 단순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김련희씨 사건처럼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서 잘못 왔다고 중간에 후회할 수 있고, 남한에 오긴 왔는데 갑자기 부모님이 보고 싶어져 귀순을 철회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이런 북한이탈주민들을 국정원이 억류한다면 그것은 옳을까요? 우리야 당연히 북한 주민도 헌법상 우리 국민이기에 남한의 법률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남한과 북한을 각각 주권을 가진 별개의 나라로 간주하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우리와 다를 수 있습니다. 남한 당국이 탈북자를 납치해 간다는 북한의 주장도 너무나 과장됐지만, 외신들의 보도를 지켜보면 남한 편에 꼭 서 있지도 않다는 게 느껴집니다. 이번 재판을 계기로, 국정원의 북한이탈주민 보호가 무조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울지법의 한 판사가 제게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신보호구제 사건은 당사자 의견이 제일 중요합니다.”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결론이 어떻게 나오건, 재판정에서 이들의 의사가 명확히 확인되는 게 중요합니다. 뭐든 감추고 은폐하는 데에서 오해와 불신이 싹트고 불필요한 논란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서울시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이 드러난 뒤 국정원은 국민에게 ‘인권보호관’ 제도를 약속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의 추천을 받은 변호사 한 명이 국정원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옛 합동신문센터) 내에 들어가 탈북자를 접촉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런 제도까지 두었는데 왜 여전히 센터 내 탈북자들의 인권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올까요. 취재를 해보니, 인권보호관 제도는 여전히 법적 근거 없이 국정원의 자선 행위처럼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인권보호관이 탈북자들을 어떻게 접견하고 있는지 등의 내용이 국회를 포함한 어느 곳에도 보고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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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현 사회에디터석 법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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