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12 20:12
수정 : 2017.05.12 20:12
11일 ‘입양의 날’…‘혼혈아 대부’ 서재송씨
국내입양 기피 탓…2015년에도 374명 국외로
전쟁은 삶의 궤적을 송두리째 바꾼다. 인천 옹진군 덕적도 주민 서재송(88·
사진)씨가 그랬다. 대학(국립 부산수산대, 현 부경대)에 진학했지만 전쟁이 발발했고 군에 징집돼 인천상륙작전에도 참여했다. 4년이 지나 제대한 뒤 고향 덕적도에 돌아와보니 섬마을은 피난민으로 가득했다. 섬 인구는 1만명을 웃돌았고(현재 1500여명), 아이들이 많았다. 부모를 잃은 고아들은 자주 섬이 떠나갈 듯 울었다. 10일 덕적도 서포리에서 만난 서씨는 “1955년쯤 이 동네에만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이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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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송씨의 인천 덕적도 집 방 한 칸은 그가 미국 등으로 입양 보낸 혼혈아동들의 기록들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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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는 복학을 포기하고 섬에 남았다. 와중에 4·19 혁명이 일어났고 동네 사람들은 자유당 소속 이장을 끌어내리고 서씨를 새 이장으로 뽑았다. 이장을 거쳐 면 서기로 일하던 서씨에게 ‘서해 낙도의 슈바이처’ 최분도(베네딕트 즈웨버) 신부가 찾아왔다. 독일계 미국인인 최 신부는 1962년부터 서해 22개 공소(본당보다 작은 성당)를 관할하는 연평도 본당의 주임신부였다. 최 신부는 가톨릭 신자인 서씨의 사무실까지 찾아와 그를 설득했고, 6개월 뒤 서씨는 공무원 생활을 접고 최 신부와 같이 전쟁고아를 돌보는 일을 시작했다. 서씨가 아내와 함께 덕적도에 꾸린 고아원 ‘성가정’엔 전쟁이나 태풍, 질병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 20여명이 머물렀다. 그 뒤 서씨 부부는 인천 부평 산곡동 ‘성 원선시오의 집’을 맡게 됐고, 1997년 폐쇄 때까지 원장으로 있으면서 100여명 남짓한 아이들을 돌봤다. 1600여명의 아이들이 이곳을 통해 미국과 캐나다 등지로 입양됐다.
미군기지가 있는 인천 부평은 혼혈아동이 많았다. 부모가 없는데다 혼혈인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인간’, ‘골칫거리’였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은 국외로 보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입양된 아이들이 어느 때부터인가 서씨를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입양 간 홍성재, 성헌 형제가 1982년 처음 그를 찾아왔다. “형제가 서로 다른 가정에 입양됐는데 어느 날 친부모를 찾으러 왔어요. 처음엔 아이들 기록에 이름이랑 기본적인 것만 써놨는데, 그러면 안 되겠더라고. (성장해서 친부모를 찾아 돌아올 아이들을 위해 기록을) 제대로 남겨놔야겠다 생각해서 이것저것 추가해 넣었어요. 핏줄은 다르지만, 모두 내 아이들이니까.” 서씨가 보여준 낡은 서류철엔 개별 아이의 사진과 이름, 성별, 생년월일, 주민번호, 본적, 주소, 보호자 연락처, 특이사항, 입양된 곳의 주소 등이 담겼다. 입양아동의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1957~1996년 동안 1073건에 이른다.
인천이민사박물관은 지난해 서씨의 기록으로 전시회(‘또다른 이민, 해외입양’ 특별전)를 열기도 했다. 서씨의 기록은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입양원이 지난해 모두 전산화(스캔)했다. 중앙입양원은 국외로 입양된 입양인의 ‘뿌리 찾기’를 돕기 위해 아직 남아 있거나 폐업한 아동보호시설의 아날로그 기록을 모아 전산화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까지 21개 기관에서 3만9000여건을 모았다. 서씨는 ‘성 원선시오의 집’ 운영을 그만두고도 기록을 개인적으로 보관해오다 중앙입양원 쪽에 내줬다. 중앙입양원 관계자는 “개인이 이 정도 규모의 자료를 보관해온 사례는 서씨가 유일하다”고 했다.
지난해 말 현재 국외 입양인은 17만명 규모다. 중앙입양원의 기록물 전산화는 내년쯤 마무리될 예정인데 지난해에만 자신의 친부모를 찾아달라는 요청이 1600건가량 접수됐다. “소재 파악에 성공하는 건 1000건가량이지만, 실제 친부모와 만나는 경우는 15% 정도에 불과하다”고 입양원 관계자는 전했다. 한국은 입양아동의 인권을 강화하는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 가입국이지만 여전히 ‘아동 수출국’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낮은 말레이시아나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같은 국가도 국외입양을 하지 않지만, 한국에선 2015년에도 입양아 1057명 중 374명(35.4%)이 국외로 입양됐다. 5월11일은 2005년 정부에서 정한 ‘입양의 날’이다. 보건복지부는 13일 서울 세종대학교 대양홀에서 입양의 날 기념행사를 연다. 벨기에로 입양된 뒤 세계적으로 성공한 기타리스트인 드니 성호 얀센스 등이 참석한다.
덕적도/글·사진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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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송씨가 자택에 보관하고 있는 입양 혼혈아동들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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