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05 09:42
수정 : 2018.05.05 10:17
[토요판] 간첩조작 피해자 윤정헌의 싸움
무죄판결 뒤에도 남는 문제
1970~80년 일본 관련 간첩 319건
현재까지 32명 재심 무죄 확정
“대통령 방일 때 아베에게 언급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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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유학생들은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수시로 간첩 조작의 피해를 입었다. 1975년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만든 이른바 ‘11.22 사건’을 보도한 신문 지면. 이 사건 피해자들은 최근 재심에서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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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일본에서의 차별을 피해 조국으로 유학 온 재일동포 유학생들을 공포 정치 및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기 일쑤였다. 정권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거나 주요 선거를 앞두고 재일동포 간첩단 사건을 수시로 터트렸다.
1971년 4월의 서승, 서준식 형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박정희가 김대중을 간신히 이긴 대통령 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보안사는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있던 재일동포 유학생인 서씨 형제 등을 학원간첩단이라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보안사(국군 기무사령부의 옛 이름) 서빙고 분실에서 고문받던 서승은 간첩 조작에 항거해 수사관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난로의 경유 기름을 몸에 끼얹어 분신을 시도했다. 가혹한 고문 사실이 알려져 국제적으로도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지만, 서승은 1990년, 동생 준식은 1988년에야 석방됐다. 재일동포 사회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던 1975년의 ‘11·22 사건’은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옛 이름)가 만들었다.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긴급조치 9호를 발동(1975년 5월)한 지 6개월째인 11월22일 재일동포 유학생과 청년 21명을 학원침투 간첩으로 몰았다. 이 사건은 당시 정보부 대공수사국장 김기춘이 주도했다. 재심에서 피해자들은 잇따라 무죄 판결을 받고 있다.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 보고서(2007년 11월)에 따르면, 70~80년대에 터진 재일동포 및 일본 관련 간첩사건은 모두 319건이다. 이 중 군 보안사가 다룬 게 73건이다. 나머지 246건은 중앙정보부와 치안본부(경찰청의 옛 이름)가 터트렸다. 건수로 집계된 이 통계는 피해자 인원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일본 관련 간첩 검거 현황 보고’(2007년 1월)에 1970~80년대에 보안사에 간첩으로 붙잡힌 재일동포 관련 인사가 모두 73명이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피해자 300여명 가운데 유학생 피해자만 절반인 160여명인 것으로 피해자 관련 단체는 파악하고 있다.
재일동포 피해자들이 명예회복에 나선 것은 진실화해위원회(2005~2010년)의 활동 이후였다. 조국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던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진실위 활동에 반신반의했다. 오사카 지역의 재일동포 정치범 친목단체인 ‘양심수수양동호회’ 회원들은 당시에 진실규명을 신청할지를 놓고 토론을 벌였으나, 대부분이 부정적이었다. 한국의 정부기관을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였다.(김효순, <조국이 버린 사람들>) 그러나 이종수(1982년 고려대 국문과 유학 중 간첩 조작됨)씨가 먼저 신청해 “고문에 의한 조작”이라는 결정을 받아냈다.
이종수씨는 재일동포 재심 1호(2010년)도 기록했다. 그의 무죄 확정을 본 뒤에야 다른 피해자들도 재심을 신청했다. ‘재일한국인 양심수의 명예회복을 구하는 회’에 따르면, 지난 2월까지 재심 무죄 확정을 받은 재일동포 간첩 피해자는 모두 32명이며, 현재 8명이 재심 중이다. 전체 피해자 수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무죄가 나더라도 재일동포들이 조작 사건으로 입은 불이익은 여전하다. 영주권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감옥에 갇혀 있는 바람에 1년에 한번은 일본에 입국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지 못해 특별영주자격(1991년 이전에는 협정영주자격)을 박탈당했다. 따라서 3년마다 일반영주권을 갱신해야 하며, 일본 공항 출입국 때도 특별영주권자와 달리 외국인 취급을 받고 있다. 한-일 당국 간에도 현안이 돼 있지만, 일본 정부는 소극적이다.
김영진 전 진실화해위 조사관은 “오랫동안 조국으로부터 박해받고 외면받아온 재일동포 간첩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야 한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9일 일본을 방문하면 일본 정부에 특별영주권 등 재일동포 문제를 꼭 환기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종철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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