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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2 19:52 수정 : 2006.05.11 10:02

사랑을 접는 아이 서울 시내의 한 보육원에서 22일 오후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한 원생이 종이를 하트 모양으로 접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우리의아이들사회가키우자]
좀 도와주면 애들끼리 살아갈 수 있다?


“어떻게 그곳(한국)에서는 소년소녀가정세대가 있을 수 있느냐? 우리는 아주 아주 가난한 나라에서 아동이 가장이 되는 것에 대해 들어봤다. 그러나 한국은 아주 발전된 나라다. 나는 아동에게 가족을 책임지게 한다는 데에 정말 놀랐다.”(한국 정부에 대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의 질문 중에서)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어린이 복지제도와 관련해 가장 놀라워하는 문제는 소년소녀가정 제도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국제적 기준으로 보면, 소년소녀가정 제도는 아이들에게 가장이라는 짐을 지워주는 정서적 아동학대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론 매체에 등장해 해맑은 웃음을 짓곤 하는 소년소녀가정들을 보면서, 후원만 해주면 아이들끼리도 얼마든지 잘 살아낼 것이라는 믿음에 빠져든다.

‘소년소녀 가정제도’ 그릇된 인식 심어져
집안에 박혀살며 세상향한 마음의 문 닫아
소규모 그룹홈·가정위탁·입양으로 길 터야

우리의 아이들 사회가 키우자
민주(16·가명)와 민규(초등 4년·가명) 남매의 경우를 보면, 소년소녀가정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민주는 올해 초 여고 2학년 진학을 포기하고 휴학해야 했다. 혼자서 남매를 키우던 어머니가 지난해 7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지 반년 만이었다. 가뜩이나 간의 건강이 좋지 않아 쉽게 피로를 느끼는 민주는 어머니를 잃은 뒤 정신적 충격까지 겹치면서 학교를 거의 다니지 못했다. 민주는 하루를 거의 집안에서만 보내다시피 하면서, 외로움 때문이었는지 민규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곤 했다. 민규도 마음의 상처가 우울증으로 도졌다.

민규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돌보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녔는데, 어머니가 숨진 뒤에는 한동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지역아동센터 선생님들이 찾아간 아이들의 집은 쓰레기장이나 다름없었다. 끼니는 거의 인스턴트 식품이나 자장면 등으로 때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몇몇 종교기관에서 경제적 후원을 받았지만, 후원자들이 사다준 음식물은 냉장고에 그대로 쳐박혀 있었다.

이처럼 아이들이 집안에만 박혀 살면서 세상을 향한 마음도 닫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올해초 지역아동센터의 주선으로 민규가 정신과병원에서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뒤 한동안 놀이치료를 했지만, 민주가 반대하면서 치료가 중단됐다. 또 후원단체에서 집 청소를 해주러 갔을 때 민주는 집안에 숨은 채 사람들이 돌아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남매를 도와온 이들은 “아이들에겐 경제적 지원보다 주위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말한다. 후원금을 주는 이들은 많았지만, 친구가 되어주거나 엄마·아빠가 되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소년소녀가장 현황
소년소녀가정은 부모의 사망, 질병, 심신장애, 가출, 이혼, 수형 등으로 인해 만 18살 미만의 아이들이 가정을 꾸리고 있는 경우를 말한다. 정부는 지난 2000년부터 ‘소년소녀가장’이란 명칭을 ‘소년소녀가정’으로 바꾸고 15살 미만 아이들로만 구성된 경우 가정위탁이나 입양, 시설 입소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주위엔 4386명(2005년 6월말 현재)의 소년소녀가정 아이들이 있다. 이 가운데 고등학생이 1918명으로 가장 많고, 중학생(1343명)·초등학생(980명)·미취학아동(77명)도 다수다.

국내 전문가들도 곁에서 돌봐주는 사람없이 아이들끼리만 살도록 하는 소년소녀가정 제도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아동 방임을 승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폐지돼야 할 제도라고 지적한다.

노혜련 숭실대 교수(사회사업학)는 “소년소녀가정은 우리사회 전반에 ‘불쌍하긴 하지만 형편에 따라서는 아이들끼리도 살아갈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며 “방임된 아이들에 대한 더 높은 경각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 제도부터 빨리 폐지하고 소규모 그룹홈이나 가정위탁, 입양 등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주위에 친인척이 있어도 아이들을 돌볼 여유가 없는 빈곤층인 경우가 대부분인 만큼, 이들이 아이들을 보살필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하는 게 최선책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별취재팀 child@hani.co.kr


집은 있지만 가정이 없다

양육시설들 부모 역할보단 관리자 기능
복지사 감당 힘들어 소규모로 바꿔야

아동양육시설 보호아동 현황
보호가 필요한 어린이가 생겼을 때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곳이 아동양육시설(고아원)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시설 보호는 소년소녀가정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을 위해 결코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말 현재 아동양육시설은 전국적으로 239개소가 운영 중이며, 이곳에서는 모두 1만7675명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서울에만도 33개 시설에서 보호되고 있는 아이들이 2888명이나 된다.

사회복지사 등 시설 종사자들은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지만, 집단 생활에서는 아이들에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시설에서 유년기를 보낸 아이들이 보이는 수동성, 대인기피증 등은 대표적 ‘시설병’으로 꼽힌다. 선진국들이 이미 오래전에 시설 제도를 폐지하고 입양과 가정위탁만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는 체계를 갖춘 것은, 여러 실증적 연구를 통해 이런 양육시설의 한계와 문제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서울의 아동양육시설에 근무하는 한 사회복지사는 “대규모 시설일수록 아이들이 고아원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 ‘왕따’를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면서, “사회복지사 한 사람이 5명 정도의 아이들을 담당할 수 있는 정도로 아동양육시설을 소규모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설 보호는 아동보호 체계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이용해야 되는 서비스라는 점을 잊지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정영 서울가정위탁지원센터 팀장은 “동사무소 직원을 상대로 가정위탁에 대한 교육을 하기도 하지만, 잦은 자리바꿈 등으로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이 가정위탁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다보니 요보호 아동이 발생하는 경우 절차가 복잡한 가정위탁보다는 조처가 간단한 시설입소를 시키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강순원 한국수양부모협회 회장(한신대 교육학과 교수)은 “대규모 시설은 관리자-아동의 관계이지, 엄마-아빠-형제와 같은 가족의 사회적 관계가 불가능하고 당연히 가족의 역할을 학습할 기회를 박탈당한다”며, “한국전쟁 때 전쟁고아를 가장 효과적으로 수용하는 방법으로 도입된 대규모 시설은 줄여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놀아주고 가르쳐주고 싶다”

본지 기사 본 독자들 문의 줄이어
“공부방을 공동체로” 정책대안 제시도

“같이 놀아주고 싶습니다”, “공부를 가르쳐주고 싶습니다.”….

〈한겨레〉 ‘우리의 아이들, 사회가 키우자’ 기사가 나간 뒤, 소개된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40대 한 주부는 “연희가 중학교 가서 공부를 못해 소외받지 않도록 1주일에 한번이라도 공부를 가르쳐주고 따뜻한 밥도 지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름이 엄마’라는 독자는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보내고 싶다”고 연락했다. 고3이라는 한 학생은 “가끔이라도 찾아가서 놀아주고, 먹고 싶은 것도 사주고 싶다”고, 연희처럼 동방신기의 팬이라는 학생도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해봐서 마음에 와 닿는다”며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알려왔다.

아동복지정책에 대한 제안도 잇따랐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저소득층을 위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한 독자는 “공부방을 시민들이 참여해 가꾸는 교육공동체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충북 옥천의 한 교사는 “부모가 있더라도 방치된 아이들이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정책 개선을 요청했다. 초등학생 자녀 2명을 뒀다는 한 주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사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오면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복지정책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공부방 운영자는 사회 전체의 꾸준한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난의 문제나 아이들의 문제에 외면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낭만적이지도 않고, 마냥 아름답지도 않고, 고맙다는 말로 대충 마무리 할 수도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난의 문제, 아이들의 문제는 계속 들여다보고 계속 함께 하고 계속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니까요.”

특별취재팀 child@hani.co.kr

주위에 보살피는 어른이 없거나 위기에 빠진 어린이가 있으면, 〈한겨레〉로 알려주십시오. 또 이런 어린이들을 돕고 있는 분들은 정부나 이웃으로부터 어떤 도움이 더 필요한 지 알려주십시오. 정책에 대한 제안도 환영합니다. 접수된 내용은 관계기관에 전달하는 한편, 후속 기사 준비에 소중하게 활용하겠습니다.

한겨레신문사 편집국 어린이 특별취재팀 박용현 최종훈 김순배 김태형 기자

이메일 주소:chil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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