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서울의 한 임시보호소에서 자원봉사자가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 아이들은 방으로 비치는 햇살처럼, 자신들을 따뜻하게 돌봐줄 가정을 기다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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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아이들사회가키우자] ‘가정위탁’ 현수 이야기
가족 해체 등으로 부모가 돌볼 수 없는 아이를 한시적으로 맡아주는 가정위탁 제도. 전문가들은 꼭 필요한 제도이지만 “불쌍하다”며 덜컥 맡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일곱살 난 현수(가명)의 사례를 보면 가정을 잃은 아이들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이들을 보듬으려면 얼마나 큰 사랑이 필요한지 잘 보여준다. 사랑으로 키우겠다고 꼭 안아주려 했는데…7개월만에 이별 아이는 또 말을 잃었다 현수는 ‘엄마’가 셋이다. 친엄마, 첫번째 위탁모, 두번째 위탁모. 엄마는 한살 때 아빠와 헤어졌다. 아빠가 현수를 맡았지만, 술에 빠져 현수를 돌보지 않았다. 현수는 지난 3월, 첫번째 위탁모 ㄱ아무개씨의 품에 안겼다. ㄱ씨는 “아이가 정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현수는 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어둠속에 가만히 앉아 있곤 했다. 때로는 장난감을 마구 집어던졌다. 가끔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울었다. 밥상의 자기 물컵은 아무도 못 먹게 막았다. 누군가와 살짝만 닿아도 “왜 닿아”라고 소리쳤다. ㄱ씨 남편이 귀엽다고 귓불을 살짝만 당겨도, 아이는 발버둥쳤다. ㄱ씨는 “아이가 친아빠를 너무너무 싫어했다”고 전했다. 학습 능력도 떨어졌다. 현수는 “멀리 간다” 대신 “높이 간다”고 말했다. 현수는 그리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끔 소파에 앉아 “우리 엄마는 어떻게 생겼을까? 보고 싶다”고 혼잣말을 하곤 했다. 언젠가 친아빠를 한번 보고 와서는 “나 엄마랑 자고 왔다. 우리 엄마는 젊고 머리가 길다”고 말했다. 사실이 아니었다. ㄱ씨는 “사랑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많이 안아줬다”고 말했다. 현수는 조금씩 달라졌다. ㄱ씨는 “‘엄마’라고 부르라고 안했는데도, ‘엄마’라고 불렀다”며 “태어나 처음 사랑을 느낀 것 같았다”고 말했다. 혹 길에서 만나면 ㄱ씨의 얼굴을 비벼대며,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유치원에 갈 때 “껴안아 주세요”라고 했고, 찾아가면 “우리 엄마 왔다!!”며 기뻐 소리쳤다. ㄱ씨는 “아이 마음속에 내가 친엄마이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ㄱ씨의 초등학교 5학년 친딸과의 ‘엄마 쟁탈전’이었다. ㄱ씨는 “아이들이 엄마를 서로 차지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시간이 갈수록 문제는 더 꼬였다. 외동딸은 엄마의 무릎에 앉은 현수를 확 밀쳐냈다. ㄱ씨는 친딸도 무릎에 앉지 못하게 했고, 친딸은 참지 못했다. 잘 때도 문제였다. 서로 ㄱ씨 옆에서 자려고 했다. 그래서 양쪽에 아이들이 잤다. 현수는 잘 때 “엄마, 나만 봐”라고 졸랐다. 그는 두 아이 사이에서 천장을 보고 자야 했다. 하루는 ㄱ씨가 현수의 외투만 사왔다. 외동딸은 “현수 새 옷을 찢어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ㄱ씨는 더는 현수를 키우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 무렵 현수가 다니던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 있어요? 아이들을 때리고 자꾸 성질을 부려요.” ㄱ씨가 “누나가 이해를 못해줘”라며 현수에게 이별을 알린 뒤였다. 떠나던 날, 현수가 말했다. “엄마가 나 처음 왔을 때 목욕시켜줬지? 너무 좋았어!” 현수는 ㄱ씨의 뺨에 뽀뽀했다. 10월 말이었다. 그렇게, 현수는 다시 ㅊ아무개씨의 손으로 넘겨졌다. 그날 현수는 말이 없었다. “불쌍해” 덜컥 아이 맡으면 안돼 두번째 위탁모의 손으로=현수는 다시 잠을 못잤다.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났다. ㅊ씨는 “먹고 싶은 만큼 먹으렴”이라고 했지만, 현수의 식사량은 늘지 않았다. ㅊ씨가 “애기처럼 먹으면 안 된다”고 설득한 지 2~3주. 그제야 현수는 밥그릇을 비웠다. 현수는 그때까지 자기 방에서 빤히 ㅊ씨를 쳐다보곤 했다. 하루는 현수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아이들이 ‘바보’라고 놀려서 때렸어요”라고 말했다. 유치원 교사는 “아이가 너무 거칠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한번은 친아빠가 찾아왔다. ㅊ씨는 “아빠 만나러 가자”고 했지만, 현수는 “안 만날래요. 박물관에 가야 돼요. 아빠 따라가서 안 잘 거예요”라고 떼를 썼다. 어느 날, 현수는 “우리 아빠는 지옥에 갈 거야”라고 소리쳤다. ㅊ씨는 “술 먹는 아빠 때문에 굉장히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친엄마는 그립다. 동화책은 꼭 제목에 엄마라고 쓰인 것이나, 엄마가 크게 그려진 것을 고른다. ㅊ씨는 “엄마가 나오는 책을 읽어주면 참 좋아한다”고 전했다. 이제 다시 현수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ㅊ씨는 그저 동화책도 읽어주고, 목도리를 사서 목에 걸어줬다. 처음에는 하늘을 쳐다보며 “안녕이 주무셨어요?” 억지로 말했지만, 이제는 고개를 얌전히 숙인다. 요즘은 제법 ㅊ씨의 심부름도 잘한다. ㅊ씨는 “아이가 요즘은 자기 집에서처럼 잔다”고 말했다. ㅊ씨의 두 아이도 20대여서 ‘엄마 쟁탈전’도 없다. ㅊ씨는 “내 아이 같으면 한 끼 건너뛸 수도 있지만, 세 끼 꼭 먹이고 절대 매는 들지 않는다”고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ㅊ씨는 “내가 키웠던 아이들과 너무 달라 당황했지만, 희망도 보이고 이런 게 더불어 사는 것 아니냐”면서도 “밥 먹이고 재울 수는 있지만,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를 보통의 아이처럼 키울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서울가정위탁지원센터 이정영 팀장은 “가정위탁은 가정을 잃은 아이를 위한 최선의 대책”이라면서도 “귀염둥이 하나 얻는다고 섣불리 덤비기보다는 차분히 준비해야 진짜 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ㅊ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 사람과 가족이 되어 사는 것은 백화점에서 물건 고르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특별취재팀 chil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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