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 사망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 회의실 앞에서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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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폭행 · 규정위반 확인…경찰 수뇌부 문책 불가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는 26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지난달 여의도 농민시위에 참가한 뒤 숨진 전용철(43)·홍덕표(68) 농민의 사인이 경찰의 과잉진압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이에 따라 관련 부대를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 서울경찰청장 등 지휘 책임자에 대한 징계를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이날 발표로 전씨 사인과 관련해 “경찰과는 무관하다”는 등 거짓말을 해온 허준영 경찰청장에 대한 퇴진 요구가 더욱 커지고 있어, 청와대의 문책 여부가 주목된다. “경찰 과잉진압 탓 사망 추정”=인권위는 전씨 사인에 대해 “지난달 15일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기동대 이동 방향에 있던 전씨가 떠밀려 뒤로 넘어져 머리 뒷부분에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홍씨에 대해서는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중 방패 등으로 가격당하고 경추(목등뼈)가 손상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두 농민을 가격한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해 가해 부대를 검찰총장에게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경찰의 진압규칙 위반도 지적됐다. 인권위는 “경찰장비 사용규칙을 보면, 방패 날을 세우거나 내리찍는 행위를 금지하고 진압봉도 하체를 위주로 사용하게 돼 있다”며 “하지만 당일 촬영 자료 등을 보면, 방패를 공격용으로 사용했고 단순 가담자에게도 방패와 곤봉을 휘둘렀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부상 농민 응급처치를 위해 대기하고 있던 여성과 노인들도 경찰이 방패로 때렸다고 덧붙였다. 인권위는 “경찰은 시위대 해산 때 집회 주최자에게 종결 선언을 요청하고 3차례 이상 해산명령을 내린 뒤 해산 또는 검거해야 하는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며 “해산이 아닌 체포를 우선해 단순 가담자와 노약자에도 무조건적인 물리력을 행사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에 따라 서울경찰청장과 차장, 경비부장에 대한 경고, 서울청 기동단장(현재 직위해제)과 가혹행위자 징계 등을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심상돈 인권침해조사 1과장은 “다만 경찰청장의 정치적, 도의적 책임은 판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전원위에는 이종우 전 서울청 기동단장 등이 출석해 “농민대회가 유례없는 과격시위였고, 방어 목적으로 방패 등을 사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인권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 책임 확인…시민단체 “환영”=경찰의 책임을 분명히 한 조사 결과가 나옴에 따라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처음으로 시위 진압으로 2명 이상이 숨진 사태에 대한 문책론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전용철·홍덕표 농민 살해 규탄 범국민대책위’(범대위)가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와 허준영 경찰청장 사퇴, 진압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할 때마다 정부는 “조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태도를 보였다. 경찰도 애초 책임을 전면 부인하다가 책임이 있을 가능성을 시인한 뒤로는 “인권위 조사를 지켜보자”고 밝혀 왔다. 경찰 고위관계자는 “27일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일지 여부 등에 대해 청와대와 조율을 거친 뒤 경찰청장이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며 “수뇌부 사이에서는 권고를 받아들이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한편, 범대위는 기자회견을 열어 “인권위가 과잉진압을 직접적인 사인으로 인정한 만큼 대통령이 공식 사과하고 허준영 청장을 경질해야 한다”며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청와대 앞 밤샘농성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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