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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9 22:10 수정 : 2005.01.09 22:10

무언가 잘못을 하면 서양사람들은 죄의식을 느끼고, 동양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말이 있다. 이 말대로라면 서양 사람들은 하나님의 시선에 갇혀 사는 것이겠고, 동양 사람들은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양심의 통제를 받고 사는 것이니, 동양 사람들이 더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 학교는 2002학년도부터 교문 지도를 없앴다. 생활지도부 선생님들과 선도부 학생들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으레 정문과 후문을 지켜왔는데 갑자기 없애자고 하니 우려의 목소리도 많았다. 그러다가 새로 생활지도부를 맡은 선생님들이 결단을 내린 것인데, 학생회의 의견을 들었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그 뒤 무언가 학교의 기강이 풀린 것 같다는 생각을 선생님들도 하고 학생들도 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각이나 용의 복장에 대한 지도가 교문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을 바꾼 모양이다.

나는 솔직히 교문에서 감시의 눈길을 받지 않고 등교하는 학생들이 참 보기 좋았다. 그것은 학생들을 대접해 주는 것이요, 인격체로 인정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몇 가지 문제가 있고 잃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얻는 것이 너무 소중하고 크기 때문에 신념을 가지고 지속한다면 매우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1년 동안 우리 학교 교육을 평가하는 선생님들의 설문에서도 60% 이상이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서 반가웠다.

날마다 ‘지도’라는 이름으로 선도부의 감시의 터널을 빠져나와 등교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3년 동안 반복한다는 것은, 비록 그럴 의도는 없다 하더라도 학생들의 인격에 상처를 주는 것이다. 등교 시각, 교복, 머리를 챙기는 그 시선 속에서 학생들의 자존심은 깎이고 또 꺾이는 것이다. 선도부 학생들이 투철한 사명감으로 지도를 철저히 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성실이지만, 과연 우리 학교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우울함을 떨칠 수 없었다.

올해는 우리 학생들이 자유와 자율을 누리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생각해 보니 자유와 자율도 그냥 얻는 것이 아니고 능력을 키워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양심과 신념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예 제도가 없어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지금도 스스로 노예가 되어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누구의 감시, 누구의 시선을 의식하여 규칙과 규범과 법규를 지킨다면 그것은 독립된 삶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제 학교는 학생들이 자유와 자율을 통해서 몸으로 삶의 기쁨을 누리는 기회를 생활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자유와 자율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고 그런 삶을 누리게 되리라. 서울 한성여중 교장 soam88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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