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7.01 17:09
수정 : 2013.07.02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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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8일 오후 서울의 한 고등학교 앞. 치마를 미니스커트처럼 짧게 줄여 입은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어울려 하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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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니까, 걸그룹 영향…” 이유는 가지가지
“친구랑 학원 앞에서 와플 먹고 있는데 모르는 아줌마가 와서 기집애가 왜 이렇게 치마가 짧냐며, 착한 애 괜히 망치지 말라고 했어요. 친구는 학교 단속이 엄격해서 치마가 길었거든요. 어이없고 짜증났죠.(김아무개양)”
“한 반에 절반 이상은 다 줄여요. 유행이기도 하지만 안 줄이면 찌질하게 보는 시선 때문이죠. 아무리 잘생기고 예뻐도 바지통이 넓거나 치마가 길면 왠지 ‘왕따’로 보여요.(이아무개양)”
여학생들의 교복 치마 길이가 지나치게 짧아졌다. 무릎 위 20~30㎝까지 올라가는 건 기본이다. 이 때문에 학교 현장에서는 치마 길이를 늘이려는 교사들과 줄이려는 여학생들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진다.
지난 20일 오후 4시, 남녀공학인 서울 ㄷ고교 정문 앞. 하굣길 여학생들은 ‘하의실종’(하의를 입은 건지 안 입은 건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짧은 치마·바지를 입은 상태)에 가까웠다. 여학생들은 상의 길이도 치마 허리춤까지 줄여 입었다. ‘옷을 몸에 대고 박은 것처럼’ 달라붙게 줄인 아이들도 보였다. 이 정도면 의자에 제대로 앉기도 힘들다. 버스 손잡이도 잡기 힘들어 보였다.
1학년 김아무개양은 “치마는 기본적으로 무릎 위 20㎝는 올라가야 예쁘다. 공동구매로 교복 치마를 3만원대에 샀는데 바지랑 앞에 덧댄 천까지 줄여야 해서 2만원 가까이 더 들었다”며 “중학교 때는 엄마가 치마가 그게 뭐냐고, 똥꼬 다 보이겠다고 한소리 하셨지만 이제는 포기했다”고 웃었다.
임아무개양도 “사복 입을 때도 치마가 길면 촌스럽고 이상하지 않나? 무조건 길다고 단정한 것도 아닌데…”라며 “이젠 너도나도 다 줄여 입으니 선생님들이 교문지도나 벌점제 시행도 거의 안 한다”고 덧붙였다.
ㄷ고 여학생 교복은 원래 치마였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큐롯팬츠(치마바지)를 도입해 치마와 혼용해 입도록 했다. 큐롯팬츠는 뒤에서 보면 바지지만 앞에서 보면 치마처럼 보이는 옷을 말한다. 이 학교가 큐롯팬츠를 도입한 건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서다. 남녀공학인데다 짧은 치마는 수업받을 때나 계단을 오를 때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하의실종’ 치마를 단속하다 결국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울 ㅅ여고는 규율이 세기로 유명하다. 치마 길이를 무릎 중간까지로 정해놓았다. 매일 아침 생활부원들이 교문 앞에 늘어서 학생들을 ‘스캔’한다. 걸리면 벌점 3점. 8점이 넘으면 교내 상을 받을 자격이 박탈된다. 생활부원들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눈을 번득인다. 학교 밖에서 치마 길이를 짧게 줄여 입는 모습을 사진 찍으면 상점을 받는다. 학생들은 불만이 대단하다. 윤아무개양은 “치마 길이 단속을 견디다 못해 전학 가는 애가 한 반에 1~2명은 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한 여학생은 “그렇게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단속 때문에 전학 간 애 2~3명은 알고 있다”고 거들었다. 조아무개양은 “다른 학교 애들 마주치면 창피해서 동네 가서는 치마를 접어올리고 다닌다”고 속상해 했다. 기자와 만난 이 학교 학생들은 “무릎 보이는 게 왜 야한 거냐” “규제받는 데 신경 쓰느라 공부하는 데 되레 지장 있다” 등등 일제히 불평을 터뜨렸다.
학생시절 교복을 고쳐 입는 건 예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형태를 일부 바꾸는 정도였지 요즘처럼 ‘하의실종’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여학생들 치마 길이에 직접 영향을 준 건 뭐니뭐니해도 걸그룹들 의상이라고 학교 안팎 관계자들은 말한다. ‘벗기 경쟁’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성 연예인들이 아슬아슬하게 입고 TV에 등장하니, 자연스럽게 여학생들이 따라하게 된 것이라는 것. 서울 동작구의 한 교복판매점 직원 서아무개씨는 “드라마에서 여배우들이 입고 나오는 교복은 다 짧은데 왜 여기 진열된 교복은 안 짧으냐고 묻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 교복을 직접 디자인한 김현정 미술교사(인천 해원고)는 “학생들이 자기 몸에 맞지 않는데도 붙으면 날씬해 보인다고 착각을 해서 몸을 꽉 조이게 줄인다”며 “계단을 걷는데 치마폭이 좁아서 두 발을 같이 움직여야 할 정도”라고 꼬집었다.
여학생들의 짧은 치마는 몇 해 전부터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2011년 강원도 교육청은 치마를 입은 여학생들을 배려해 관내 중고교 책상 5만500여개에 앞가림막을 설치하려 했다. 예산은 8억2000만원. 그러자 보수 교원단체인 교총이 발끈했다. 당시 교총은 “학칙을 강화해 치마 길이를 제한하면 되지 예산까지 써가며 짧은 치마를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도 교육청은 “앉는 자세에 따라 얼마든지 학생들의 다리가 치마 아래로 드러날 수 있어, 수업 현장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 싶다는 교사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문제가 어떻게 됐는지 강원도 교육청에 전화해보니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가림막을 설치하도록 해서 현재 진행상황을 알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강원도 교육청과 교총의 치마 길이 논쟁은 당시 영국 BBC 인터넷판에 소개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여학생들의 짧은 치마는 특히 남자 교사들에게 부담스럽다. 수업 때 아예 천장만 바라보고 수업하는 남성 교사가 있을 정도다.
스판 소재의 베이지색 교복 치마 안에 같은 색깔의 속바지를 만들어 입는 서울 소재 ㄱ고교. 애초부터 치마 길이가 짧다. 1학년 최아무개양은 “내가 따로 줄이지도 않았는데 어른들이 학생답지 못하다고 손가락질하거나 어디 학교냐고 물어본다”고 전했다. 전아무개양은 “짧으니 따로 수선을 안 해서 좋긴 한데 시선은 느껴진다”며 “여자선생님이 와서 조심하라며 남자선생님이 수업할 때 시선 둘 데가 없어서 천장만 쳐다본다고 하더라”고 웃었다.
여학생들이 교복 치마를 줄여 입는 건 청소년 특유의 ‘또래의식’ 탓이기도 하다. 다른 아이들은 다 줄여 입는데 나만 안 그러면 왠지 ‘찐따’(찌질이+왕따)가 된 듯하기 때문이다. 2~3년 전 노스페이스 점퍼가 유행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최아무개양은 “아무리 예쁘게 생겼어도 교복을 안 줄이면 왕따 취급을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유행이니까”, “예뻐 보여서”, “잘 나가게 보이려고”가 여학생들이 말하는 교복 치마 길이를 확 줄이는 이유다.
모상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청소년들이 교복을 줄여 입는 심리적 요인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 친구가 하면 그걸 따라하는 집단적 동료의식 때문이다. 두 번째는 자기중심성이 강한 때라 자신은 특별한 존재이며 남과 다르다는 걸 보이고 싶어서다. 세 번째는 질풍노도의 시기로 사회 규범에서 벗어나고 싶은 반항과 일탈의 심리 탓이다.”
고양 중산고 안태일 교사는 “아이들과 감정선이 부딪히고 교칙으로 벌점 줘봤자 소용이 없다”며 “학생들의 복장 문제는 교사뿐 아니라 학부모도 함께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화진 기자 lotus57@hanedu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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