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30 16:26
수정 : 2005.01.30 16:26
은자로 마을 토토염소찾아 홀로 산에 오르는
순수하고 용감한 아이 이야기
‘사람 사는’아프리카 땅
아프리카 사람들의
색감으로 살려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가 펴내는 계간지 〈북페뎀〉 최근호는 ‘그림책’을 특집으로 다뤘다. 〈북페뎀〉은 현재 국내 그림책 시장의 95%를 외국 그림책 번역물이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1997년 이후 지속됐던 그림책 시장의 성장도 지난해를 고비로 주춤거리기 시작했단다.
‘386세대’ 학부모들 덕택에 그림책 시장은 커졌지만, 그 이윤은 미국·유럽·일본 그림책의 번역에 주력한 몇몇 대형 출판사들이 독식했고, 번역물의 바닥이 드러난 지금 ‘위기징후’가 함께 돌출한 것이다.
도서출판 다림이 펴내고 있는 ‘우리작가 그림책’ 시리즈는 그래서 더욱 의미있는 기획이다. 이번에 나온 〈은자로 마을 토토〉에 이르기까지 모두 5권의 책을 냈다.
지난 99년 11월 천재작가 이상의 동화를 그림책으로 다시 구현한 〈황소와 도깨비〉(한병호 그림)는 지금까지 17쇄를 찍어낼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2000년 〈양초귀신〉(강우현 글·그림), 2002년 〈도도새와 카바리아나무와 스모호 추장〉(손춘익 글·송수정 그림), 2003년 〈왕치와 소새와 개미〉(채만식 글·최민오 그림) 등도 평론가와 시장의 좋은 반응을 받았다.
1년에 한 권 꼴로 펴내는 긴 호흡은 각 그림책에 상당한 ‘공력’을 들인 결과로 보인다. 덕분에 좋은 이야기를 받쳐주는 좋은 그림이 계속 소개됐다. 여기서 그림은 이야기 속으로 스며들어 더욱 빛난다. 〈황소와 도깨비〉 〈양초귀신〉에서는 전통의 해학을 녹인 수묵의 붓터치를 살렸고, 〈도도새와 …〉에서는 서양화의 몽환적인 색채로 남미 정글을 구현했다.
〈은자로 마을 토토〉에서도 이런 장점은 그대로 드러난다. 이야기의 배경인 아프리카의 한 마을은 은은하고 고요한 수채화처럼 그려진다. ‘내셔널지오그래픽’ 류의 총천연색 사바나는 여기에 없다. 서구인의 눈에 비친 아프리카는 야만이 핏빛으로 번득이는 땅이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눈에는 푸른 하늘과 초록의 들판이 빚어낸 고즈넉함과 평화로움이 보일 뿐이다. 〈은자로 마을 토토〉는 ‘사람이 사는’ 아프리카 땅을 아프리카 사람들의 색감으로 훌륭히 살려냈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지은이가 아프리카를 직접 여행하며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을 충분히 경험한 덕이다.
염소를 찾아 홀로 산에 오르는 순수하고도 용감한 토토의 이야기는 그래서 동아프리카와 동아시아의 공간을 넘는 ‘동심’의 보편성을 웅변한다. 아프리카의 사자가 아니라 아프리카의 아이와 만나는 새롭고도 뒤늦은 경험을 우리 아이들에게 마련해 준 것이다. 우리의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구호를 넘어, 세계의 다양성을 우리 안의 보편성으로 승화시키려는 지은이의 혜안이 돋보인다. 그런 노력을 벼리며 세계의 아이들과 호흡하려는 작가들이 있기에 한국 그림책 출판에 대한 기대를 버릴 수 없다. 취학전, 민은경 글·그림. -다림/8000원.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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