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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새벽 발생한 화재로 장애인 노동자 4명이 숨지고 5명이 다친 경북 칠곡군 가산면 장갑 공장이 불에 타 뼈대만 남았다. 칠곡/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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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서 자던 4명 참변 “이렇게 가려면 태어나지나 말지. 너무 보고 싶어. 목소리가 듣고 싶어 …!” 9일 오전 11시, 대구 북구 읍내동 칠곡가톨릭병원 영안실. 전날 새벽 경북 칠곡군 가산면 학산리 장갑 제조공장 시온글로브 화재사고로 숨진 이재훈(21·포항시 북구 두호동·정신지체 2급 장애인)씨의 어머니 장아무개(49)씨가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하다 끝내 쓰러졌다. 포항시에서 빌딩 청소일 등을 하는 장씨는 포항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남편과 함께 역시 장애인인 이씨의 동생(20) 등 두 아들을 키워왔다. 숨진 맏아들이 포항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말께 보수는 적지만 안정된 직장에 취업을 해 기뻐한 것도 잠시, 불의의 화마가 아들을 앗아간 것이다. 장씨는 “재훈이는 고교시절 개근상을 탈 정도로 성실하고, 엄마에게 너무 잘하던 딸 같은 아들이었다”며 “70만원 남짓한 봉급에도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우리에게 어째서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8일 아침 6시30분께 장갑 제조공장 1층에서 일어난 원인 모를 불은 삽시간에 2층 기숙사로 번져 어렵게 얻은 일자리에서 소중한 미래의 꿈을 가꾸던 이씨 등 장애인 노동자 4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이 건물 안에는 교통비 부담이나 사정이 생겨 귀가하지 않은 장애인 노동자 14명만이 잠을 자고 있었다. 이날은 휴일이어서 기숙사를 관리하던 사감이 자리에 없었던데다 장애인들이어서 사리 판단과 민첩한 행동이 어려웠던 점이 참사를 키운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씨 등 3명은 육안으로 신원 확인이 안 될 정도여서 사고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짐작게 한다. 숨진 이들 가운데 유일하게 신원이 확인된 유윤성(26·대구 동구 방촌동)씨는 휴일마다 집을 찾았으나, 이날은 팔순 넘은 부친 병환 때문에 이사를 하는 바람에 기숙사에 묵은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최상재(38·경북 영천시 문외동·정신지체장애 3급)씨의 어머니 허아무개(60)씨는 “식당과 공공근로 등을 전전하며 어려운 생활을 하다 이런 공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스스로 면접을 봐 입사한 뒤 보람스럽게 여겼다”며 “지난주 집을 찾은 아들에게 날씨가 추우니 꼭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라며 눈물을 훔쳤다. 시온글러브는 면장갑과 산업재해 보호용 특수장갑을 생산해 세계 각지로 수출하는 업체로 연간 매출액이 170억원 규모이며, 전체 직원 209명 가운데 79명이 장애인이다. 이 업체는 장애인 노동자 대거 고용으로 장애인고용촉진공단에서 장려금을 받아 왔으며, 지난해 기술경쟁력 우수기업과 장애인 고용모범 사업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8년부터 장애인을 고용해온 김원환(39) 시온글로브 사장은 “신앙과 사회에 도움이 되려는 생각에서 장애인 고용을 시작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니 할말이 없다”며 “하지만 장애인들 덕분에 수출이 늘어나고 큰 도움을 받았으니 재기한다면 이들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사망자들의 신원 확인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하는 한편, 정확한 화재 원인과 장애인 대피 및 경보기 작동 등 회사 쪽의 소방 대응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조사 중이다. 칠곡/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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