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둘러본 서울 성북구 길음동 길음시장 골목은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한산한 모습이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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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공개청구로 확인해보니
전통시장 반경 500m안 점포 50개 ‘똬리’
설 연휴가 끝난 지난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길음시장 골목은 오가는 사람을 마주치기 힘들 만큼 한산했다. 야채와 식품을 파는 이정례(63)씨는 “설날 떡국에 쓰는 가래떡이 고스란히 남아 냉장고에 가득 쌓였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축산물 백화점에서 정육 도구를 정리하던 오강석(36)씨도 “이번 설엔 대목이 아예 없었다”고 말했다. 오씨는 “길음뉴타운 개발로 주민들이 떠난 뒤에도 뉴타운 입주만 기다리며 버텼는데, 지난해 기업형 슈퍼마켓(SSM)과 대형마트가 왕창 들어서면서 시장 상인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고 한탄했다.
SSM 주변 가구수 ‘시장의 2배’…목좋은 곳 차지상생·유통법 ‘때늦은 입법’ 시장 몰락 막기 역부족
서울시 전통시장과 SSM 분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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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씨가 정보공개를 통해 받은 전통시장과 기업형슈퍼마켓의 주소를 지리정보시스템(GIS)에 입력해 얻은 결과를 보면, 전통시장과 기업형슈퍼마켓이 붙어 있는 곳이 50곳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밀집지역이 비슷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씨의 정보공개청구를 바탕으로 기업형슈퍼마켓이 인구가 밀집한 아파트 주변 등 유리한 위치에 입점해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2009년 기준 공동주택(아파트·5층 이상 빌라) 현황을 기업형슈퍼마켓과 전통시장의 위치 정보에 입력해보니, 기업형슈퍼마켓 반경 500m~1㎞ 안의 평균 가구 수가 같은 거리의 전통시장 주변 가구 수보다 두배 가까운 수치를 보였다. 전통시장 주변 500m 이내 평균 아파트 가구 수는 2939가구인 데 견줘, 기업형슈퍼마켓의 평균 가구 수는 4200~5300가구였다. 반경 1㎞의 경우 전통시장은 1만2025가구, 기업형슈퍼마켓은 1만5000~1만8000가구로 나타났다. 기업형슈퍼마켓이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 밀집지역에 집중적으로 진출해 장소 이전이 불가능한 전통시장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이 수치로 증명된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 서울의 중소상인들이 기업형슈퍼마켓에 무방비로 노출되며 실질적인 매출 감소를 겪고 있는 실태는 여러 자료에서 드러난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지난해 9월 금융감독원과 중소기업청으로부터 제출받은 통계를 보면, 2006~2009년 4년 동안 기업형슈퍼마켓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2배 이상 오른 데 반해 주변 상인들의 매출은 5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을 벗어나도 마찬가지다. 김재경 한나라당 의원이 소상공인진흥원에서 받은 자료에도 지난해 11~12월 영호남과 제주, 강원 지역 대형마트 인근 중소 상인 500개 업체가 대형마트 진출 뒤 하루 평균 매출이 17만8000원(32.8%)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이번 정보공개청구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기업형슈퍼마켓이 아닌 자본력 있는 개인 소유의 대형마트와 이들의 할인 공세도 전통시장 상인들에게는 위협적인 존재다. 성북구 돈암제일시장에서 쌀가게를 운영하는 한아무개(50)씨는 “여기는 기업형슈퍼마켓이 4년 전부터 영업중이고, 1년 단위로 개인 소유의 대형마트가 할인 경쟁을 벌이다 교체되는 등 사면초가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지난해 11월 시장 500m 안에 입점할 계획이던 이마트는 상인회가 막아냈지만, 언제 또 복병이 나타날지 몰라 가슴을 졸인다고 한씨는 말했다. 이승준 이유진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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