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11 10:06
수정 : 2020.01.1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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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오랜만에 연락해온 친구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곤 한다. 의미 없는 안부를 몇차례 물어오다 어김없이 청첩장이나 돌잔치 초대장을 수줍게 내미는 일을 몇차례 경험하면서였다. 그런데 친구의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생각이 바뀌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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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런 홀로
친구의 부고
대학 동기의 암 투병 소식
값싼 동정 될까 위로도 자제
온몸 떨리는 새벽 부고
몸과 정신이 붕 뜬 느낌
다른 곳에서 행복하길
나를 떠올려준 이들과
고마운 밥 한끼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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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오랜만에 연락해온 친구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곤 한다. 의미 없는 안부를 몇차례 물어오다 어김없이 청첩장이나 돌잔치 초대장을 수줍게 내미는 일을 몇차례 경험하면서였다. 그런데 친구의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생각이 바뀌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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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대학 동기의 투병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서른둘의 나이였다. 아주 친하게 지낸 건 아니지만 내가 갖지 못한 부분을 많이 가진 친구라 항상 멋있다고 생각하던 녀석이었다. 모두를 살뜰히 챙기는 마음 덕에 인간관계가 좁디좁은 나와도 가끔 술 한잔씩 기울이곤 했다. 그 친구가 가지고 있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더욱 큰 열정으로 거듭나 있었다. 나는 그의 넘치는 열정이 부러우면서 한편으론 그 친구를 보고 현실에 안주하는 내 모습에 자괴감을 느꼈다.
그러다 그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준비할 시간을 채 주지도 않고, 이미 생각보다 진행이 많이 되었다는 사실도 함께였다. 심하게 현실감 떨어지는 낯선 문장들이 한꺼번에 내게 쏟아졌다. 그 와중에 섬뜩하게도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라 마구 자책했다.
“이 나이에 암이라니, 그래도 요즘은 암도 잘만 치료하던데 뭘.” 그러고는 뻔뻔하게 함부로 합리화를 했다. 감기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곧 좋은 소식이 알아서 들려오기를 잊고 살며 기다렸다. 괜찮은지 몇번이나 묻고 싶었지만 왠지 값싼 동정처럼 느껴질까, 혹은 어설픈 위로가 상처가 되진 않을까 싶어 물어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토요일 저녁 이태원의 음소거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의 암이 다른 곳으로 전이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 얼굴을 봐야만 했다. 친구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도 눈썹도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고 했다.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본인으로 인해 다른 이들이 불편을 겪는 것도 싫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사실 핑계라는 걸 알았지만 이 상황에도 누군가를 배려하려 드는 친구의 태도에 몹시 화가 났다. 그래도 내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몇차례 실랑이가 지루하게 오가다 그 친구와 친한 동생에게 부탁해 어렵사리 자리를 만들었다. 그 동생은 절대 슬픈 감정을 티 내거나 어설픈 동정과 위로를 하지 말자며 내게 몇번이나 다짐을 받아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장소는 토요일 저녁의 이태원이었다. 화려한 옷차림의 수많은 사람들이 왁자지껄 분주히 걸어가는 가운데 우리만 동떨어진 세상에서 음소거 상태에 놓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는 여전히 밝고 씩씩한 모습이었지만 문득 의미 없이 주고받는 이 대화와 시간들이 친구에게는 너무도 소중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는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서로의 안부를 집요하게 물으며(건강에 대한 주제만 빼고) 치열한 사회생활 속에서 꿋꿋하게 버텨내자며 각성된 운동선수들처럼 연신 파이팅을 외쳐댔다.
집으로 가는 길, 방향이 같은 친구와 나는 단둘이 지하철에 올랐다. 친구는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과 재테크에 관한 이야기를 연신 재잘거렸다.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지만 그 평범한 삶을 얼마나 소중히 곱씹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지 절절히 느껴져 슬펐다. 뭔가 의미 있는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지만 끝끝내 “힘내라”는 위로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늘 술에 잔뜩 취해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던 것과는 달리, 그날은 너무 멀쩡하고 너무 또렷했다. 모든 것이. 그 뒤로도 친구에게 제대로 된 안부를 따로 묻지 못했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비겁함 탓이었다. 대신 주변 친구들에게 근황을 묻고 ‘별일이 없는지’ 정도만 확인할 뿐이었다. 늦은 여름, 그 친구도 속한 대학 동기들의 단톡방에서 눈치 없이 모바일 청첩장을 던진 친구에게 불같이 화가 났지만 그 친구는 “꼭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남기며 나를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제 막 토요일로 들어선 새벽 1시30분. 잠결에 메신저 알림 소리가 귓가를 강하게 때렸다. 평소 같으면 전화건, 잘못 설정된 모닝콜이건 절대 듣지 못할 시간이었음에도 유난히 선명하고 날카롭게 나를 깨웠다. 졸업 이후 한번도 연락한 적이 없는 동기가 보낸 세개의 메시지였다. 미리보기로 확인 가능한 내용은 “너에게 알려줘야 할 거 같아서…”였다. 직관적으로 그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요한 새벽임에도 나도 모르게 꽤 큰 소리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슬픔을 떠올리기에도 너무 비현실적이고 낯선 감정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또다시 비겁하게 도망을 선택하며 억지로 잠을 다시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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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부고를 받았다. 내게 더 이상 퇴로는 없었고 그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단 몇 글자로 그 친구의 삶이 정리되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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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고 싶었던 새벽녘 메신저 알림
친구의 부고를 받았다. 하지만 내게 더 이상 퇴로는 없었고 그 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병원 이름과 발인 날짜가 낯선 언어들처럼 쓰여 있었다. 단 몇 글자로 그 친구의 삶이 정리되어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해가 떠오르면서 잊고 살던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모두 어떤 식으로든 부고를 받았을 거다. 병원에서 만나자는 연락들이었다.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나로서도 어색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친구의 죽음을 이유로 약속을 잡는 게 뭔가 이상해 혼자 알아서 가겠다며 모두 거절했다.
겉으로 보기에 장례식장은 꽤 차분했다. 늘 멋있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던 친구답게 익숙한 얼굴의 사람들이 많았다. 몇몇 후배가 내게 아는 체하며 말을 건넸지만 그곳에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일 자체가 뭔가 죄스럽게 느껴져 괜히 더 까칠하게 외면했다. 무엇보다 내 감정을 흔든 건 친구 부모님의 모습이었다. 너무 큰 슬픔에는 눈물이 나지 않는지, 결코 그럴 리가 없지만 부모님의 표정에서 극한 슬픔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들을 맞느라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고 동시에 장례가 끝나고 나면 폭발할 그들의 슬픔이 미리 그려져 안쓰럽고 괴로웠다.
며칠간 몸과 정신이 모두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열심히 살아서 뭐 하나 싶은 회의감이 들면서도, 곧장 그러니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아야겠다는 열정이 찾아오곤 했다. 그렇게 삶의 작은 방향조차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허둥댔다. 더는 같은 세상에 그 친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계속해서 이상하게 느껴졌다. ‘친구’와 ‘죽음’이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만나 나를 계속해서 마구 흔들었다.
언젠가부터 오랜만에 연락해온 친구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하곤 한다. 의미 없는 안부를 몇차례 물어오다 어김없이 청첩장이나 돌잔치 초대장을 수줍게 내미는 일을 몇차례 경험하면서였다. 결국 축의금 고지서냐 싶은 마음에 까칠하게 굴었다. 그런데 친구의 장례식장을 다녀오고 생각이 바뀌었다. 바쁘지도 않으면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쁜 척해가며 사는 걸까. 밥 한번 먹자는 아무렇지 않은 얘기에도 나란 인간은 뭐 그리 의심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이제부터는 다르게 반응해보려 한다. 어떤 이유에서건 나를 떠올려준 이들에게 감사하며 밥 한끼 먹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싶다.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라도 후회를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말이다. 너무 빨리 다른 곳으로 가버린 친구, 그곳에선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정말로.
날아라 통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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