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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7 19:16 수정 : 2006.02.08 13:57

설 이틀 전 시댁인 경주에 도착. 다섯 시누이들의 가족 모두를 시내의 한 식당으로 초대했다. 시어머니를 중심으로 모인 25명의 얼굴이 싱싱했다. 한바탕 웃음 속에 삶은 대게를 나누고, 멸치, 립팔레트, 양념 김, 양말 선물을 나눴다. 이런 이벤트는 외며느리인 나의 궁여지책. 설 쇠러 시댁엘 가도 시간에 쫓겨 다섯 시누이 가족들을 골고루 볼 수 없다 보니 행사를 기획하게 됐다.

올해 일흔이 되신 시어머니는 나의 이상형인 명랑할머니시다. 양 쪽 무릎에 쇠심을 박아넣은 인공관절로도 벌을 치셔서 해마다 꿀을 따내신다. 그 뿐인가? 집안팎 텃밭에 콩과 고추, 배추농사를 지으시며 시누이들의 아이들을 교대로 키워내셨다. 시누이들에게 시어머니는 거의 절대적인 버팀목이자 조언자. 쉰을 갓 넘어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셨지만 타고난 씩씩함을 한번도 잃으신 적이 없다.

1남 5녀의 자식들에게 어머니의 철학은 한마디로 압축된다. “남에게 피해주는 사람이 되지 마라.” 내 자식이 남보다 잘나야 한다는 강박이 없으시니 1남 5녀는 그저 평범하게 자랐다. 결과적으로 어느 누구하나 크게 출세한 자식이 없다. 남보다 잘나야 한다는 비장한 결의를 할 필요가 없었으니 자식들은 하나 같이 잘 웃고 잘 먹는 낙천주의자들로 자랐다. 실현이 버거운 야심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아 면역체계도 튼튼한 모양, 가족 두루 건강하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이신 시어머니에겐 탁월한 균형감각이 있다. 아들 며느리의 불화에도 전혀 아들 편을 들지 않으시며 사안을 경청하신다. 다섯 딸들의 생태를 완벽하게 파악하신 내공으로 난해한 며느리를 이해하시려 애쓰신 시어머니께 어찌 내가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어느 틈엔가 시어머니의 왕팬이 되고 말았다.

해마다 겨울이면 손수 기른 배추와 태양초로 담근 시어머니표 갈치 김치가 우리집 김치냉장고에서 평화롭게 익어간다. 아삭한 김치를 한 입 먹을 때마다 나는 부르짖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이번 설에도 마당에 무쇠솥을 걸고 끓여낸 곰국과 그 화덕에서 빼낸 숯으로 마당 한 가운데에서 석쇠구이 바베큐까지 마련해 주시니 우리집 아이들은 명절이 되면 할머니집에 빨리 가고 싶어 안달이다.

시어머니와 발 치수가 같은 나는 신발을 나눠 신는 사이가 된 것이 너무 즐겁다. 결혼 22년 만에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구별이 안되는 경지에 이르른 건 순전히 시어머니 덕분이다. 팔순 기념 선물로 시어머니의 전기를 쓰고 싶다. 평범하게 살아오신 한 생애가 가진 비범함을 내가 담아낼 수 있을까? 설 전에 모두 모인 김에 기념 촬영을 해두는 건데, 아쉽다. 해마다 한번씩 모두 모여 사진을 찍는다면 어머니의 전기 집필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시어머니를 중심으로 함께 가는 자궁가족, 우린 즐겁다.

박어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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