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07 19:16
수정 : 2006.02.08 13:57
남성 페미니스트 권혁범 교수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 펴내
2년 전 탈민족주의 담론을 내세우며 <국민으로부터의 탈퇴>(삼인)를 감행했던 권혁범 교수(대전대 정치외교학과)가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강요된 남성성로부터의 탈퇴’를 시도했다. 최근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또 하나의 문화)란 책을 펴내면서다. 5년여 동안 <한겨레> <한겨레21> <말> <이프> 등에서 써온 여성주의적 칼럼들을 한 데 모았다.
권 교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남성 페미니스트’다. ‘일상의 정치’나 ‘개인적인 것은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페미니즘의 격언을 금쪽처럼 신봉한다. 전체주의, 민족주의, 조국 근대화 같은 거대 담론뿐만 아니라 “남자는 태어나서 세번 운다”는 ‘농담’ 같은 말에도 정색을 하고 딴죽을 건다. “나는 여전히 ‘계집애 같아서’ 일주일에 두세번씩 우는가?”
사실 그는 ‘태생적인 페미니스트’라기보다는 ‘태생적인 삐딱이’다. 일상의 성차별을 인류 최대의 정치적 상황으로 여긴다. 그의 이런 성정치적 사유는 일상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과학자의 비판정신과 결부돼있다. 그가 자신의 글에서 끝도 없는 의문부호를 던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왜 젊은 신랑은 매매춘으로 미리 딱지를 떼어 첫날밤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남자들이 여성과 똑같은 피해자라면 왜 그리 가부장제 사수에 열심일까?” “평등은 근대 민주주의의 당연한 목표가 아닌가?” “이 글을 읽는 여성 독자들은 성차별의 정서로부터 얼만큼 자유로울까?”
그는 가부장적 감수성과 대중문화를 분석하며 낭만적 사랑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이혼을 은폐하는 사회를 질타하며, ‘스위트홈 이데올로기’를 비판한다. 군사주의, 여성징병제에 대한 ‘아찔한 분석’도 마다하지 않고 끝내 “징병제 변혁에 여성들도 함께 힘을 모으자고 하는 게 순리가 아닐까?”라고 묻는다.
결국엔 날선 질문의 끝을 자신에게 겨눈다. 책을 내면서 드는 걱정이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임을 공표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해온 일이 뭐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 탓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잔뜩 갈기를 세운 성정치적 분석에 비해 페미니즘이 가진 자기 치유와 긍정의 측면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최근 몸과 마음의 병에 지친 그가 앞으로 얻어가야 할 페미니즘의 가치가 아닐까?
남성 페미니스트라고 커밍아웃한 것은 대학 때 나혜석의 <에미는 선각자였느니라>를 읽고부터였다고 한다. 1979년에는 군대에서 ‘와이에이치 사건’ 당시 의문사한 여성노동자 김경숙의 이야기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이 책도 그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억울하게 죽어간, 가슴에서 잊혀지지 않는 내 또래”라고 부르는 고 김경숙에게 바쳤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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