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07 19:18
수정 : 2006.02.08 13:57
■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
‘발바리 세포가 빠르게 분열하고 있다’, ‘시흥 발바리 검거’, ‘서울에도 발바리’…. 요즘 신문지면과 텔레비전 뉴스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발바리’란 말은 대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경찰에서 용의자가 빠르고 흔적 없이 범행을 저지르고 다녀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더군요. 이 은어를 언론이 그대로 받아 퍼뜨리는 게 문제지요. 피해자들을 희화화하고, 여성들에게 막연한 공포심을 주게 되니까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인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45)은 요즘 언론이 성폭행범들을 한결같이 ‘발바리’라 부르는 일이 유감스럽다고 했다. “언론이 성폭행 범죄를 선정적이고 가볍게 취급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준다”는 설명이다. 성폭력상담소에서 이런 용어 사용에 대해 비판하는 성명을 낸 뒤 ‘발바리’란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밝힌 언론사는 한곳 뿐이었다.
“기자들이 우리 취지에 동감한다면서도 윗선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더군요. 범죄 피해를 입고도 선정적인 시선 때문에 고통받을 이들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사건 원인 피해자에 돌려… 고소율 겨우 6.1%
언론은 ‘발바리’로 희화화 앞장… 이것이 검거 늦은 진짜 이유
그는 특히 지난해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사건 피해자들을 지원하면서 많은 좌절감을 느꼈다고 했다. 사건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수사과정과 보도과정에서 피해자를 힘들게 하는 2차 피해가 끝없이 이어져 말썽을 빚었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도 성폭행 가해자 부모가 피해자를 찾아오는 등 사건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성폭행은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 가해자의 가족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큰 범죄예요.”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은 으레 범인의 개인적인 심리를 분석하는 데 열광적으로 관심을 쏟곤 한다. 이 소장은 “성폭력범죄를 다룰 때 흔히 가해자의 가족관계, 여성편력 등을 집중 거론하는데 심리 분석에 그칠 것이 아니라 범죄 대상이 누구에게 향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최근 붙잡힌 연쇄성폭력 용의자에 대한 보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부 언론은 그가 평범한 가장이고, 아내와 금슬이 좋았으며, 자녀에게 다정했던 사람이었다는 점을 애써 강조하면서 택시를 탄 여성승객에게 모욕을 당하자 보복심리에서 성폭행을 했다는 식의 보도를 연방 내보냈다. 한 지방 신문은 아예 ‘여성들이 문을 잠그지 않고 잠을 자거나 낯선 사람을 쉽게 집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등 범행 기회를 제공했다’고 분석해 여성계의 공분을 샀다. 이 소장은 “이런 보도 행태는 은근히 피해 여성의 잘못을 강조하면서 가해자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에 대한 법·제도 개선을 작게나마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평가한다. 전국의 성폭력 무료상담소만 해도 140여곳. 피해자의 정신과 상담은 1년에 300만원까지 보장 된다. 올해 안에 여성가족부가 성폭력 피해자 원스톱 센터를 현재 전국 5곳에서 13곳까지 늘이기로 하는 등 피해자 지원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도 곳곳에서 엿보인다. 물론 풀어야 할 몇가지 숙제가 남아있긴 하다. 그는 “제도적 보완과 달리,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성폭행 범죄 대부분이 가려져있는 탓이다.
“성폭행 피해자들의 고소율은 6.1%에 그쳐요. 나머지 94%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비난의 화살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사회적 인식 탓이 큽니다. 옷차림이나 행실을 문제삼는 등 피해자에게 잘못을 돌리는 일만 없었어도 연쇄성폭행범을 잡는 데 10년이나 끌었겠나 싶습니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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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폭력피해 지원센터 8곳 더 늘려
여성가족부는 올해 안으로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등 여성 폭력 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를 전국 5곳에서 13곳으로 늘인다. 이 센터는 피해자에게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한 곳에서 일괄 지원한다. 피해자는 24시간 의료 처치, 상담, 수사, 무료 법률지원까지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다. 전문상담사와 여성경찰관이 따로 배치돼 피해자 진술 등 증거확보를 신속하게 마치는 것도 장점이다. 현재 서울, 부산, 울산, 경북, 강원에 설치돼 있으며 전북(16일), 인천(3월)에 이어 대구, 충남, 경남, 경기, 전남, 제주 지역 등이 올해 추가로 문을 연다. ?5c서울/경찰병원(경찰청 관할: 02-3400-1700, 1117) 부산/부산의료원(051-607-2017) 울산/동강병원(052-244-3117) 경북/안동의료원(054-843-1117) 강원/강원대학병원(033-243-8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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