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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여성살이] ‘28년만의 퇴직’ 난 흥분된다 |
일주일 후면 나는 명함없는 사람이 된다. 일대 사건이다. 별로 내로랄 것 없는 월급쟁이 생활 28년을 대과없이 마친다는 것은 범상한 일이다. 그간 3곳의 일터를 거치며 조직의 쓴맛, 단맛을 알았다. 그리고 대개 즐겁게 일하며 성장했다. 일은 언제나 내 인생의 우선 순위였다. 이제 모든 에너지는 바닥났다. 지난 28년간 마르고 닳도록 일했으니 자연스런 귀결이다. 출산 휴가 2달 씩 2번, 직업간 이동에 1달 쉰 것 말곤 줄곧 일에 코를 박고 살았다. 지난 몇년간 업무처리 능력과 집중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유능한 후배들은 일에 몸을 던져 몰두하고 있다. 더 이상 일벌로서 기능하기엔 스스로 부적격 판정을 내려야 했다. 떠날 때가 온 것이다.
퇴사 카운트 다운에 들어간 요즈음, 점심·저녁 초대가 밀려든다. 퇴직 선배들에게 듣던 대로 ‘막달의 반짝 특수’를 누리고 있다. 평소 본 체 만 체 하던 이들까지 우정과 동료애를 듬뿍 담은 눈빛공격을 해대는 통에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하는 소리가 튀어 나오려 한다. 몇몇 동료는 이제 뭐 먹고 살려느냐고 슬쩍 물어온다. 씩씩한 척 하지만 내심 켕긴다. 많든 적든 내가 벌어 먹고 산다고 큰 소리를 탕탕 치며 살아왔으니 이젠 어떤 논리를 개발해야 할 지 머리를 싸매야 할 형편이다. 아무래도 씀씀이를 줄여야 겠지.
이젠 무얼하지? 혼자가 되는 늦은 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오랫동안 등록하고 싶었던 댄스 강좌를 물색해 보지 뭐. 날마다 2시간 씩 양재천을 걷기로 다짐도 해본다. 퇴사 후 시간표를 이미 작성하기 시작했다는 건 은근히 겁이 난다는 말이렷다. 나인 투 파이브로 하루 종일 직장에 의해 관리당하던 일과를 이제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두려움이 어찌 없을까? 직장생활에 매여 아무 것도 못 한다고 투덜대던 것도 한편으론 관리 당하는 일상에 만족한다는 반어법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왠지 두려움 사이로 즐거움이 샘솟는다. 왜일까? 어쩌면 그냥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기쁨 때문? 아무런 위장이나 분장없이 그냥 꾸밈없는 한 인간으로 살아도 되는 자유 말이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어떤 면에서는 특정 조직에 갇혀진 존재다. 나 역시 아무리 발버둥쳤어도 조직의 관점으로 이 세계를 봐왔을 게 분명하다. 조직의 질서나 규범에 적응하느라 끙끙거렸던 날들의 통증이 생생하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기쁨이 이토록 크다니, 놀랍다. 얼마 동안 조직에 몸담았지만 그곳의 직함이란 게 원래 내 것이 아니었다면 잃은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두려움과 설레임과 함께 하는 퇴직 일주일 전, 나는 조금씩 흥분하고 있다. 한편으로 막막한 ‘미지와의 조우’가 전혀 새로운 배역을 가져올 지 누가 알겠는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는 여전히 근거없는 낙관론자다. 길이 끝났다고 생각한 바로 그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기도 하는 법. 그리고 나는 살아있는 모든 날을 생일처럼 살고 싶은 꿈을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다.
박어진/ 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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