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석방 대상” 극단적 선택 납득안돼
구치소, 유서 등 공개안해 은폐의혹 커져
서울구치소에서 교도관으로부터 성적 괴롭힘을 당한 데 이어 자살을 기도한 여성 재소자(35·<한겨레> 2월23일치 1면)가 애초 알려진 것과 달리 이르면 이달 말께 출소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자살 기도 원인을 둘러싼 의혹이 커지고 있다.
교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23일 “이 여성 재소자는 가석방 대상으로 분류돼 구치소 쪽이 본부에 가석방을 상신한 상태였다”며 “이런 경우 보통 80% 가량이 석방된다”고 밝혔다. 가석방이 결정되면 통상 매달 말 출소한다.
이에 따라 출소를 눈앞에 둔 재소자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 여성 재소자는 자살을 기도하기 전 유서를 남겼으나 법무부와 서울구치소 쪽은 이 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는 통상 관례에 크게 어긋나며, 교도소 쪽이 여성 재소자 가족의 편지까지 언론에 공개한 것과는 대비된다. 당국은 또 이 여성이 성적 괴롭힘을 당한 뒤 처음 신고한 내용, 구치소가 사건을 자체 조사한 내용 등도 일절 밝히지 않고 있다. 때문에 유서 안에는 성적 괴롭힘을 당한 구체적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구치소 쪽이 이 여성 재소자의 신고를 접수한 뒤 닷새 만에 법무부에 사건을 보고한 점도 ‘늑장 보고’라고 법무부 교정국 관계자들은 말했다. 이런 사건은 통상 2~3일 안에 보고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구치소는 또 여성 재소자가 자살을 기도한 뒤 형 집행정지 조처를 검찰에 건의하는 과정에서 자살 동기를 밝히는 데 필요한 앞뒤 사정도 보고하지 않았다. 형 집행정지 지휘 건의서를 받았던 서울중앙지검 당직검사는 “(자살을 기도한 지 하루 만인) 지난 20일 오후 6시께 서울구치소 쪽의 서류를 접수받았으나, 해당 재소자가 성적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나 자살 동기에 대한 보고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구치소는 “상담실에서 일어난 사건과 자살을 기도한 사건은 전혀 무관하다고 판단해 그렇게 보고한 것일 뿐 은폐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문제의 교도관이 피해 여성의 가족에게 준 합의금 액수도 구치소 쪽이 1천여만원이라고 밝힌 것과 달리 26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을 통해 교도행정의 허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제의 교도관은 1년여 전부터 우울장애로 정신과 치료는 물론 입원까지 한 바 있으며, 성적 괴롭힘 사건 다음날인 지난 2일 구치소 쪽에 ‘우울장애 판정’ 진단서를 내고 현재까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교도관은 여성 재소자들과 단둘이 상담실에서 만나 수형 생활과 가석방 적격 여부 등을 예비심사하는 중요한 업무를 맡고 있다. 법무부는 교도관이 “앞으로 남성 직원이 여성 수용자를 상담할 때 여직원이 반드시 입회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법무부는 이날 서울지방교정청 보안과장을 조사반장으로 하는 조사반을 서울구치소에 보내 진상규명에 들어갔으며, 국가인권위원회도 24일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조사하기로 했다. 의왕 안양/김기성 유신재, 김태규 기자 rpqkf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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