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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14 19:19 수정 : 2006.03.16 14:32

왼쪽부터 강은영 전문연구원, 이미경 소장, 박미라 편집위원

꼼짝마! 성폭력 사회

지난해 성범죄 발생건수는 1만2446건. 매일 전국에서 34건 이상의 성범죄가 일어나는 셈이다.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에게 전자 팔찌를 채우거나, 화학적 거세를 하거나, 신상 공개를 하면 성폭력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까? 전문가들이 10일 한겨레신문사 6층 회의실에서 최근 불거진 다양한 성폭력 사건을 놓고 의견을 나눴다. / 좌담

참석자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강은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
박미라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위원

이미경 소장(이하 이)= 최근 각종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 사람들은 경악하지만 상담소에 일상적으로 들어오는 사건과 비슷하다. 최연희 의원의 성추행도 술자리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건 유형이다. 이런 사건들을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했는데 분위기가 그렇지 못해 아쉽다.

박미라 편집위원(이하 박)= 최 의원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지만 같은 성폭력이라도 가해자 남성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사건의 처리 속도와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문제다. 최 의원 사건도 가해자가 책임을 지도록 하면 되는데, 정쟁이 됐다. 일부에서는 총리의 3·1절 골프도 문제지만 한나라당이 최 의원 사건을 물타기 하는식으로 골프 파문을 키우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한다.

강은영 전문연구원(이하 강)= 성폭력 대책을 세우기에 앞서 가해자 특성을 알아야 한다. 가해자 대부분은 범행을 부인한다. 설문조사를 해보면 수감된 성범죄자 70%가 자기는 다른 범죄를 했다고 쓴다. 어린이 대상 가해자도 “아이가 원하고 좋아했다”고 한다. 신고율도 낮고 잘 잡히지도 않기에 잡히면 억울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미경 소장
“최 의원 사건 정쟁 변질…
전자팔찌 인권 침해 우려 약물거세는 실효성 의문”

= 성폭력은 피해자가 더 힘들다. 입증책임도 피해자 몫이다. 여자 탓이라고 비난도 받는다. 신상 공개, 전자 팔찌, 화학적 거세 등 해결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성폭력은 범죄고 피해자 잘못이 아니란 점을 명백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전자팔찌는 반대한다. 전자장치가 인간 생활을 감시·감독하는 것이 염려된다. 화학적 약물 거세는 미국 일부 주에서 하고 있는데 성폭력은 성적인 욕구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에 실효성에 의구심이 들어서 반대한다.

= 신상 공개도 잘 따져보아야 한다. 수감된 성폭력 가해자들 가운데 이종범죄까지 합하면 전과 5~6범 이상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린이 성폭력 가해자들은 전문적으로 동종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많다. 전과가 많은 성폭력범들은 신상 공개를 위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불가피한 경우 가가호호 방문을 해서 알려주는 한이 있더라도 등급을 나눠서 해야 한다. 치료 재활이 어려운 집단은 전자팔찌로 재범을 억제할 수 있을 듯하다. 프랑스는 종신형처럼 차게 하는데 기간은 사회적으로 합의를 하고, 대상자도 극소수로 줄여서 해야 한다. 연간 100~200명 수준이 아닐까. 약물거세도 재범을 막는 효과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성폭력 가해자들은 성적 강박이 큰 사람들이 많다.

= 우리 사회는 피해자의 인권과 지원이 섬세하게 고려되지 않는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 지원도 가족 치료와 함께 가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지 않나.

= 친족 성폭력은 사회 전체가 피하고 싶어하는 의제다. 전체 상담의 12~13%가 될 정도로 친족 성폭력이 많다. 반면 가족 치료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너무 없다. 청소년 위원회는 가해자 친권 박탈을 고려중인데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어머니의 경제적 독립 능력이 없어 그냥 함께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친권 박탈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 친권 박탈을 해야 한다고 본다. 엄마가 친부의 성폭력을 알아도 경제적 자립능력 없어 묵인하고 있으면 장기화된다. 교도소 조사에서는 성폭력 사범 전체의 20% 정도가 친족이다. 성인 대상 성폭력은 단기인데, 어린이는 피해 횟수도 평균 31회, 평균 기간은 280일 정도로 늘어난다. 어린이 성폭력에서 친족 성폭력은 출발점이다. 아버지, 오빠, 동네사람들 식으로 중복확대된다. 어린이들은 “미워할 거야”는 애정 철회 하나만으로도 가해자 뜻대로 범행을 할 수 있다.

= 피해자 개인의 짐이 너무 크다. 자기파괴적이고, 주변도 힘들게 한다. 결혼 뒤에도 그 짐 때문에 가정 생활이 파괴되는데 사회는 이혼만 막자고 한다. 피해자들 탓이 아니라고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 가해자들중엔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다. 정부도 어린이 성폭력 가해자 대부분을 정신질환자로 보고 치료 감호를 고려하고 있다는데, 현실과 거리가 있다.

= 어린이 성폭력 가해자들이 어린이에 대해 성적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모두 정신질환자는 아니다. 이른 시기로부터 어린이에게 성적 매력을 느껴온 고착형보다 나이 들어 그런 인식이 형성된 퇴행형이 훨씬 많다. 음주문화도 문제다. 어린이 성폭력의 1/3은 가해자가 음주상태에서 저지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음주에 너무 허용적이고, 술 탓이지 개인 탓이 아니라고 여기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음주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외국에서도 술 판매 장소와 시간을 규제하는 곳이 많다.

강은영 연구원
“성폭력범 대부분 전과 많아…
신상공개 위협 안느껴 전자팔찌·약물거세 효과 가능”

= 인터넷, 음주 등을 규제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성폭력이 벌어졌을 때 가혹한 처벌을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 지금은 유명한 한 여성 연예인이 10대 시절 야한 춤을 추던 광고가 있었다. 외국이면 규제 대상이 됐을 것이다. 10대 여자 아이가 성적 매력이 있다고 공공방송에서 공공연히 보여주는 것이다. 연예인 연령이 낮아져 규제가 필요하다. 어린이 성폭력 가해자들은 특히 가해행위를 하면서도 애정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시민감시기능이 필요하고, 신고 의무를 저버리면 처벌 규정을 두는 게 필요하다. 아이들이 일어나서 잠잘 때까지 다니는 모든 장소가 피해장소다.

= 어린이 성교육이 강력한 해법이 아니라는 데는 공감한다.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교육시키고 나서 1분도 안 돼 따라가더라. 하지만 신고 의무를 두면 상담소는 모두 다 신고를 해야 하나.

= 어린이 성폭력 사건을 보면 5~6번째에 신고를 한다. 가해자가 같은 수법으로 같은 동네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신고를 안 한다. 자연히 범죄가 장기화 되고, 가해자 한명에 피해자 수가 많다. 용산 어린이 살해사건도 비슷했다. 청소년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들은 더더욱 죄책감이 없다. 여관을 가거나 집에까지 가서 놀았다는 것은 합의 한 것이라고 본다.

박미라 위원
“친족 피해자 방치 심각…
가족치료도 함께 하도록 공범 낳는 술문화 바꿔야”

= 성인 가해자들도 늘 “여자도 즐겼다” “화간이다”라고 한다.

= 여성에 대한 물화된 성인식, 왜곡된 성의식은 일반인에게도 존재하고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다급하게는 범죄까지 간 사람들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연구해야겠지만, 사회·문화적인 것들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바꾸어야 할 건지 의논을 해야 한다.

= 성폭력 본질은 힘을 더 가진 사람이 덜 가진 사람에게 행하는 폭력 모두를 가리킨다. 성충동이야 남녀 같지 않나. 남자들의 성충동이 강하다고 용인하는 게 문제다. 여자도 성충동을 더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 여자는 약하다는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한 여성 검도 사범은 늘 진검을 등에 꽂고 다녔는데도 남자가 쫓아와서 안으니 못 싸웠다고 하더라. 상황이 발생하자마자 여자는 피해자가 돼버리는 것이다.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최 의원 성추행 사건도 술자리에서 성추행 당한 수많은 여자가 함께 무력감을 경험한다. 늘 있는 문제고,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는 식으로… 거의 학습 수준이다.

= 최 의원 성추행 사건도 피해자는 이미 “여자도 문제”라는 식으로 2차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다. 모두들 이 사건의 결과를 눈여겨 본다지만 한나라당 당대표는 탈당으로 끝이라고 얘기한다. 윤리위원회도 종이호랑이다. 윤리규정에 관련 규제 자체가 없다. 시민단체가 끝까지 지켜볼 거다.

= “술자리에서 성추행 안 해본 남자 있냐”는 식으로 말하는 잠재적인 공범들은 자신이 뜨끔하기 때문에 몰아붙이지 않는다. 여기자들은 유리천정을 깨기 위해서라도 술자리에 참여해야 한다. 남자 의원들은 술 문화를 바꿔야 하는 거고. 술자리는 여자들을 배제한 채 거래를 결정하는 또 다른 여성 소외의 장이기도 하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 결국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돼야 한다.

정리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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