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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14 19:30 수정 : 2006.03.15 14:05

한 달에 한번 정도 친구들과 조조 영화를 본다. 대개 토요일이고 강북 도심의 지하철 환승역에 맞닿아 있는 극장이기 마련. 보통 네 명에서 여섯 정도 모인다. 조조 영화를 보게 된 건 조조 할인의 짜릿함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적은 관객 숫자 덕분에 극장안 공기가 더 깨끗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우린 자리를 뜨지 않고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준 모든 이들에게 합당한 예를 표한다. 그 다음은 점심 메뉴를 고를 차례. 낙지아구찜의 매콤달콤한 소스에 밥까지 볶아 달달 긁어 먹고 일어선다. 이젠 찻집으로 가 서로에 대한 정보를 업데이트 할 차례. 이번엔 영화평 뿐만 아니라 스크린 쿼터 축소가 대한민국 영화 산업에 미칠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파장을 분석하느라 바빴다.

나이 들어 갈수록 평수 넓은 아파트 보다 좋은 친구들이 큰 재산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젊은 날엔 서로 남편과 자식들을 비교해보며, 결혼생활과 독신을 비교해 가며 상처를 주고 받았던 적도 있다. 그러나 세상살이의 고단함이 우릴 다시 만나고 뭉치게 했다. 약자였고 소수인 직장 여성의 처지를 공감한 우리들은 서로에게 기대지 않고는 조직내 지뢰밭 같은 인간관계와 일의 무게를, 아니, 그 나날의 전투를 감당해 낼 수 없었다. 결혼 생활 역시 녹록하진 않았으며 우린 서로의 지혜를 빌리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온갖 여행과 기발한 소풍 아이디어를 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연락과 예매를 도맡는 친구도 있다. 음식 솜씨가 뛰어난 친구는 매번 기막힌 음식 선물로 우릴 감동시킨다. 타고난 이야깃꾼인 친구 하나는 매번 모노 드라마 공연 수준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각자 타고난 재능을 합하니 정보능력이나 기획력, 그리고 실행에 이르기까지 거의 천하무적이다. 놀이뿐 아니라 직장 내 문제 해결 방식 토론이나 네트워킹의 노하우에 이르기까지 우린 서로의 가장 든든한 멘토였다. 이제 우린 안다. 우리가 허덕거리던 일상의 전투 중 눈물과 한숨을 나누며 같이 먹었던 떡볶이나 칼국수가 ‘소울 푸드’ 였다는 걸. 멍들고 지친 서로에게 공감하고 위로하며 벌인 수다판이 항암제였다는 걸.

요즘 우리 관심사 중 하나는 죽음이다.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죽는 법, 그리고 그에 이르기 까지 실천 가능한 행동 지침들을 연구하자는 의견이 지지를 받는다. 자주 이야기하게 될 수록 우린 더 준비된 죽음을 맞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름답게 살다 아름답게 죽고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에.

이렇게 나이들어 가면 언젠가는 백발을 휘날리며 할머니 조조영화 클럽이 뜰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난다. 그리고 든든하다. 사랑하는 친구들아, 너희들이 있어 나는 세상살이의 ‘서러움 모두 버리고’ 이 한 생애를 건너간다.

박어진/ 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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