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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28 17:39 수정 : 2006.03.29 15:33

“빈곤과 차별을 넘어 희망을 찾자!” 25일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빈곤추방 여성노동권확보 희망본부 발대식’ 무대에서 근로 빈곤여성들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사진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제공

9개 지역 참여 ‘희망본부’ 발대식

국내 최대 규모의 근로 빈곤 여성 조직이 탄생했다. 지난 25일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는 서울, 부산, 인천, 안산 등 전국 9개 지역에서 찾아온 500여 명의 여성들이 모여 ‘빈곤추방 여성노동권확보 희망본부 발대식’(이하 희망본부)을 열었다. 자리를 메운 여성들은 대부분 저소득층 근로 빈곤 여성들. 여태껏 ‘여성의 탈빈곤’을 주장하는 자리는 많았지만 전국 단위의 근로 빈곤 여성들이 한 데 모여 ‘박수부대’가 아닌 ‘주인공’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근로 빈곤 여성’은 열심히 일해도 온 가족이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든 여성 노동자들을 가리킨다. 지난해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에서 최저생계비(지난해 4인 가구 기준 113만6천원)에 못 미치는 수입을 가진 근로 빈곤 여성가장 1006명에 대한 설문·면접 조사 결과 임시일용직 비율은 82.2%나 됐다. 82만 원 이하의 저임금 소득군도 74%였다. 국가지원을 받는 이는 10%대에 머물렀다.

‘희망본부’에는 전국가정관리사협회, 자활공동체, 간병인협회, 일자리 사업단, 한부모 자조 모임 등의 근로 빈곤 여성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차상위층이나 자활사업 대상자, 또는 모부자복지법 대상자들로 정부의 ‘정책 수혜자’인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조직화에 앞장선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의 최상림 대표는 “여성노동자의 70%가 1년 미만의 단기 계약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노조에 가입조차 못해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기 힘들었다”며 “전국 2000여 명의 여성들이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굳이 이들이 자신의 힘겨운 처지를 알리려 하는 것은, 스스로 삶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다. 부산의 ‘한부모가족 자립센터’같은 긍정적인 모범 사례가 빈곤 여성 세력화의 불을 지폈다. 이 센터는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시대를 막 지난 2000년 여성 한부모 가장의 자조 모임으로 활동하던 이들이 2004년 만든 곳이다. 회원 규모는 100여 명. 대부분 노점, 가사보조, 청소, 간병 등의 일을 하고 있지만 회비 납부 정회원이 80%에 이를 정도로 모임이 활성화되어 있다.

가장 큰 성과는 사회적으로 냉대를 경험한 여성들이 모여 서로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워주며 희망을 찾았다는 점이다. 자립센터 김직상 소장은 “더 이상 빈곤 여성들을 비참하게만 여기지 말아달라”며 “고압적이고 불친절한 공무원이나 한부모 여성에 대한 색안경 낀 사회의 시선 때문에 주눅든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다르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우리가 여성노동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설 만큼 자신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노점·청소·간병 등으로 생계꾸리는 저소득층 여성
뭉쳐서 문제해결 주체로 일자리창출·차별해소 박차

희망본부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자립가능한 일자리 창출 및 고용지원정책 수립 △한부모 가정 빈곤 방지를 위한 통합적 지원정책 수립 △빈곤세습화 단절 및 경제활동 참여여건 개선을 위한 육아지원정책 수립 △최저임금 현실화 및 여성고용차별 개선 등의 사업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또 연 2회 근로 빈곤 여성 실태조사 발표, 가사서비스 종사자 일자리 및 소득안정을 위한 실태조사 및 토론회(4월), 한부모 자립지원정책 진단을 위한 토론회(7월), 저소득층 영유아보육문제 해결을 위한 대응 활동(10월), 한부모 상담실 운영 등 ‘근로 빈곤 극복 운동’을 펴 나가기로 했다.

이재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아이엠에프 사태 때 해고 1순위였던 빈곤 여성의 문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며 “빈곤 여성에게 일은 선택이 아닌 생존수단이며, 스스로 역량을 키운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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