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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8 16:20 수정 : 2006.04.19 14:30

장애인연맹 여성위원장 김효진씨

김효진 한국디피아이(한국장애인연맹) 여성위원장(44)은 어느모로보나 완벽한 여성이다. 유쾌·상쾌·통쾌한 성격에 친구도 많다. 4년 전 결혼식 때는 200명의 하객을 예상했지만 친구들이 400명씩이나 몰려들어 음식이 모자랐다.

잘 하는 것도 많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아이 잘 키우고, 10년 경력의 운전 실력도 수준급이다. 공부복·일복도 많다. 국문학 전공으로 대학원을 졸업한 뒤엔 계간 <보이스> 편집장을 지냈고 인터넷 장애인신문 <에이블뉴스>에서 ‘백발마녀전’을 연재해 인기를 끌었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최근 <오늘도 난, 외출한다>(웅진 지식하우스·장차현실 그림)는 에세이까지 펴냈다. 해야 할 일, 행복할 일, 멋지게 살 일이 너무 많은 여성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세상은 그의 ‘진가’를 모르는 듯했다. 그는 목발을 짚고 걷는다.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할아버지 등에 업혀 학교를 오가다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비로소 자기 발로 첫 외출을 감행했다. “나 혼자 걸을 거야!”라고 선언한 뒤 넘어져서 턱이 찢겼다. 나이 마흔에 비슷한 장애를 가진 남편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는 어머니조차 “네가 결혼하지 않기를 바랐다”며 냉담했다 한다. 그는 “어머니는 딸이 결혼을 해서 장애 때문에 평생 주눅 들어 사느니 성공한 여자가 돼 보상받기를 바란 것 같았다”고 말했다.

비장애인들에게 무감한 일상이 그같은 장애여성들에게는 넘기 힘든 고비가 되기도 했다. 스스로 포기했던 운동회며 소풍이며 합창대회며 체육시간, 그를 태우지 않고 지나치던 버스, “집에나 있지 왜 돌아다니니?”라고 말했던 이들…. 모두의 바람대로 집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알 수 없지만 그리 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란 것쯤, 그는 알고 있다.

장애 여성의 정체성을 깨달은 건 39살, 불혹을 코앞에 뒀을 때였다. 그때까진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도, 남의 장애를 눈여겨볼 수도 없었다. 어느날 “나도 변화시키고 세상도 바꾸는 일이 뭘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문득 “장애가 내 삶을 풀어가는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바로 한국디피아이에서 장애인운동을 시작했다.

마흔 가까워서야 장애에 ‘불혹’ 세상과 자신 바꿔나가는 삶
“차별받는 사람 이해해 행복” 인기연재 ‘백발마녀전’ 책으로

이번에 책을 낸 이유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성장과정을 담은 그의 책은 장애라는 비극을 극복한 장애인의 성공담이 아니다. 그는 이 책을 두고 “사회비평 에세이로 읽혀지길 바란다”고 했다. “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장애여성이라서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여성은 차별받아 눈물 흘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필리핀 이주 노동자는 말 못한다며 학대받아본 아픔이 있겠지요. 저는 그들의 삶을 살지 않고도 이렇게 뼛속 깊이 공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세상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으니까요.”

세계 보건기구가 추정한 장애인구는 전체 인구의 10%나 된다. 그는 “장애인은 비장애인 위주의 사회에서 치료나 재활을 해야 하는 환자가 아닌, 있는 그대로 완전한 사회의 구성원”이라며 “장애인을 염두에 둔 사회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욱이 그는 어려서부터 장애 때문에 예쁘게 보이는 일, 연애하고 결혼하는 일을 꿈꾸지 못한 채 무성적 존재이길 강요당하고 이를 내면화해온 장애여성이기에 할 일도 많고, 할 말도 많다.

그래서 앞으로 그는 결혼, 출산,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더 쓰고 싶어 한다. “모성은 내게 치유였고, 장애여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보채는 법 없고, 방글방글 웃기 좋아하고, 붙임성 있어 보는 사람마다 “예술이다”라고 감탄한다는 아들 찬이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임신중일 때 한 친구가 제 아이에게 ‘탁월한 선택’이라며 축복을 해줬는데 대단한 위로와 격려가 되었어요.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온 우주가 움직여 아이를 준 거라고 생각해요.”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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