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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4.19 14:57 수정 : 2006.04.19 14:57

한국여성운동은 개화기 및 일제 치하에서 구국운동이나 독립운동 같은 애국운동으로 시작됐다.

1927년 최초의 여성단체인 근우회가 신간회의 자매단체로 설립됐다. 김활란, 조신성, 최은희, 유각경, 주세죽 등이 조직한 이 단체는 일제강점기 항일구국운동과 함께 여성 지위 향상 운동을 벌였다.

70여개 지회가 운영됐으며 회원수가 2천900명에 달했다. 여성문제 토론회와 강연회 개최, 야학 실시, 문맹퇴치 운동, 광주학생운동 및 각종 항일학생운동 지원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1931년 신간회 해체를 전후해 해산됐다.

1959년에는 대한여학사협회, 대한YWCA연합회, 여성문제연구회, 부녀보호사업연합회, 학생문제상담소, 대한어머니회, 대한부인회총본부, 한양여성클럽 등 8개단체로 구성된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발족됐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여성단체들의 가족법 개정 운동은 1970년대 들어 범 여성운동으로 확대되면서 여성운동의 주류를 이뤘다.

또 소수 여성층이 인권운동, 민주화 운동과 여성노동운동을 지원하면서 그 힘을 성장시켰는데 1970년대초 여성이 동일방직 지부장으로 당선되면서 생존권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여성 노동자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다.

1980년대를 전후해 직장 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직장과 가정에서의 성폭력 문제가 함께 대두됐는데 1986년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이 그 촉발제가 됐다.

1980년대로 넘어와 일하는 여성이 증가하면서 맞벌이 부부가 늘자 자녀양육문제와 '공보육' 개념이 제기됐고, 가정에서도 평등한 남녀 역할을 주문하게 됐다.

1982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 여성학과 석사과정이 설립되면서 대학에도 여성학과가 본격적으로 설치됐다.

1980년대 후반에는 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연합 등 각 부문 여성들의 자생적인 집단의 조직화로 여성운동이 분야별로 전문화되는 한편 연합체 조직으로 연대성을 확립해나가 1987년에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창립됐다.

1990년대 들어 여성운동은 여러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특히 30여년간 전개해 온 가족법 개정운동이 성과를 거둬 여성들이 요구한 개정법안이 1990년 국회에서 통과, 여성을 차별하는 호주상속제도가 약화됐으며 재산상속과 분배에서 평등권이 강화됐다.

또 '군 위안부' 문제가 심각한 여성 인권침해문제로 인식되면서 그동안 부끄럽게 여겨졌던 성 문제도 제기됐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1992년 유엔인권소위원회에 군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여성의 정치 세력화를 위한 조직적 노력이 1995년 지방자치단체선거에서부터 힘을 발휘해 이후 정계의 여성진출이 현저하게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높아져 2000년 여성부가 출범하게 된다.

또 꾸준히 펼쳐져 온 호주제 폐지운동도 성과를 거둬 2005년에는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1927년 근우회 설립

▲1956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개소

▲1959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발족

▲1983년 한국여성의 전화 연합 창립

▲1986년 권인숙 씨 성고문 사건

▲1987년 여성민우회 창립, 한국여성단체연합 창립

▲1990년 가족법 개정안 국회 통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결성

▲1993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2000년 여성부 출범

▲2005년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 개정안 통과

김희선 기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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