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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23 17:29 수정 : 2005.02.23 17:29

지난 22일 경기도 가평의 한 캠프장에서 열린 ‘10대 소녀들의 스프링 캠프’현장. 10대 성범죄 피해청소년 참석자들이 성매매업소에서 탈출한 ‘언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상처받은 아이들 “오랜만에 웃어요”

연극으로 재연땐 대성통곡
“가슴속 응어리 뻥 뚫렸어요”

“남자들이 우리를 꼬실 때 난 ‘미쳤다’라고 말을 하고 싶다.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지영(16·가명)이는 지난 19일 먼 나들이를 했다. 경기도 가평 산골짜기에 자리잡은 한 캠프장. 이곳에서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가 연 3박4일짜리 프로그램인 ‘10대 소녀들의 스프링 캠프’에 참석했다. 지영이가 처음 집을 나온 건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아버지의 손찌검 때문이었다. 가출하고 집에 돌아가길 3년째 되풀이했다. 결국 5달 전 돈 때문에 ‘원조교제’를 하다가 경찰의 함정수사에 걸려 청소년 보호시설에 가게 됐다. 시설에선 지영이 또래의 10대 친구들 14명이 함께 살아간다. 길게는 2년 짧게는 10일 정도 미만으로 이곳에서 산다. 가출을 했다가 강간, 성매매, 강제추행 등 성범죄 피해를 입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날 캠프는 한국기독교청년회연맹(YMCA)이 에스케이텔레콤의 지원을 받아 센터에 의뢰해 진행됐다. 지영이를 비롯해 13살부터 18살까지 가출한 10대 여성 청소년 11명이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이 가운데 많은 아이들이 정서불안, 환영, 우울, 과잉욕구 등 갖가지 상처와 아픔을 겪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여러번 강간을 당하거나 낙태를 경험한 아이들도 있다.

‘가출 소녀’라는 낙인을 수인처럼 달고 살던 아이들은 “오랜만에 맘껏 웃고 울었다”고 했다. 첫날부터 한국기독교청년회연맹에서 멘토링(상담) 교육을 받은 3명의 멘토(상담자)들이 내내 함께 머물면서 상담을 해주었다. 상담에 참가한 문명선(24·대학원 진학예정)씨는 “아이들이 폭력적인 부모와 ‘나쁜 남자’들에 대한 증오와 의존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둘쨋날, 연극 치료를 하면서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던 내면의 분노와 적개심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어렵사리 중학교 졸업자격 검증시험을 통과한 민아(17·가명)는 엄마와 함께 한 고등학교에 입학하려고 방문했다가 겪은 수치심을 연극으로 재연했다. 학교에 들어가려고 찾아온 자신과 엄마에게 “가출 소녀 아니냐”며 비난하던 교감 선생님은 엄마가 대들자 “그 엄마의 그 딸”이라며 소리를 쳤다. 아이들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대성통곡했다. 영선(15·가명)이는 폭력적인 아버지의 얘기를 재연했고 지영이는 “나랑 똑같다”면서 영선이의 아버지를 무대에서 끌어냈다. 미정(17·가명)이는 가족들과 함께 외식하고 놀이동산을 찾던 추억을 되새겼다.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또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연극을 마친 아이들은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후련하다”고 말했다.



마지막날인 22일에는 기다리던 손님들이 찾아왔다. 유흥업소 등에서 성매매를 하다가 탈출한 ‘생존자 언니들’이었다. 이들은 갑작스레 쏟아진 폭설에도 불구하고 40여분 동안이나 산길을 걸어와 가까스로 아이들을 만났다. “어려운 현장에서 살아남은 우리를 ‘생존자’로 불러달라”던 이들은 자신들의 경험담을 솔직히 털어놨다. 15살 때 가출한 뒤 티켓다방부터 시작해 섬까지 팔려갔다던 한 여성은 “주저앉지 않고 한발만 더 나가면 된다는 심정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또 한 여성은 “여동생과 원조교제를 하려고 채팅하던 30살짜리 남자를 만났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그런 것(성관계) 더 좋아한다’면서 동생과 만나게 해달라고 하더라”며 “내가 동생이라면 유혹당하지 않고 공부를 계속 하겠다”고 덧붙였다. 3박4일의 일정을 마친 아이들은 “친구의 우울하던 성격이 밝아졌다”고 서로를 격려하며 “앞으로도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3년 동안 우리나라 성범죄 피해 청소년은 7200여명에 달했다. 청소년보호 업무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그리고 성매매 피해자 보호 업무는 여성부가 담당하고 있다. 10대 성범죄 피해를 입은 여성청소년들의 보호와 계도 업무가 애매하게 나뉘어져 있는 셈이다.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이명화 소장은 “여성이면서도 지원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10대 여성청소년들의 쉼터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한국기독교청년회연맹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성범죄 피해 청소년들을 위해 다양한 진로탐색 프로그램과 자립기반 마련 행사를 열 예정이다. 연맹의 이혜정 간사는 “반복적인 부정적 경험으로 깊은 분노, 우울, 낮은 자존감을 갖고 있는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관심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가평/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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