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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6.27 18:09 수정 : 2006.06.28 14:15

박송희·심화영씨

원로여성예술인 4인 다음달 1일 한 무대

중고제 판소리와 승무의 마지막 계승자 심화영(94)씨를 비롯한 네 명의 원로여성예술인들이 한 무대에 오른다. 서울여성플라자가 7월1일 오후 3시부터 아트홀 봄에서 여는 ‘할머니의 꿈’ 공연에서다. 서울여성플라자가 11회 여성주간(7월1~7일)을 맞아 이들의 삶과 예술, 그리고 생애사를 재조명하려는 뜻으로 마련했다. 7일까지 전영자(82·전통침선예술가)씨의 침선 작품이 따로 전시되고 이들의 생애사를 담은 자료집도 발간한다.

고령 탓에 어렵사리 무대에 오르게 된 심씨는 중고제 판소리 가문 청송 심씨의 마지막 소리꾼이다. 가수 심수봉씨의 고모로도 잘 알려진 그는 이번 무대에서 ‘춘향가’의 ‘쑥대머리’를 부른다. 그의 소리는 슬픔을 밖으로 내뿜지도, 속으로 꺽꺽 참지도 않는 편안한 달관이 엿보이기로 이름 높다. 2000년 여든여덟 나이로 뒤늦게 충남 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에 지정돼 춤은 외손녀 이애리에게 전수했지만 중고제 판소리는 그로 끝이다. 지금은 예인으로 대접받지만 ‘광대’라 천시받는 한 시절을 보낸 그는 자녀를 낳아 기르며 춤과 소리를 널리 알리지 않다가 중고제 명맥 잇기에 나선 이들의 권유로 여든이 넘어서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영자·최희선씨

판소리 심화영 박송희씨, 춤 최희선·침선 전영자씨
여성·예인 이중굴레 딛고 지켜온 삶과 예술 재조명

여성명창 박녹주에게 흥보가를 사사받은 박송희(80·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흥보가 예능보유자)씨는 이번 공연에서 ‘흥보 박타는 대목’을 부른다. 그의 소리는 남성 소리꾼에 비해 점잖고 담백하다. 대중 앞에서 즉흥적으로 익살과 외설적인 부분을 끼워넣던 남성에 비해 여성의 사설은 그 부분이 아예 축소되거나 삭제되어 전해졌기 때문이다.

고종과 대원군의 총애를 받아 무과선달이라는 벼슬까지 받은 대구 약전골목 달성권번의 예인 박지홍을 만나 춤을 배운 최희선(78·달구벌 입춤 예능 보유자)씨는 굿거리춤을 보여준다. 전영자씨는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던 할아버지가 몸을 피해 정착한 중국 용정에서 교사로 일하던 조선왕실의 궁녀 출신 이정인에게서 익힌 전통 기법의 바느질과 자수 작품을 선보인다.

이들은 여성과 예인이란 이중의 굴레를 쓰고 근현대사를 살았지만 꿈을 잊지 않았다. 결혼 때문에, 남편의 반대로, 사회의 냉대로 꿈을 채 잇지 못했기에 평생 안타까움의 연속인 듯 싶건만 할머니가 된 지금도 여전히 꿈을 꾼다. 심화영씨는 결혼으로 꺾인 예인의 삶을 아쉬워하면서도 외손녀의 춤사위를 보며 자신을 이어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나가리란 기대를 감추지 않는다. 박송희씨는 “힘이 빠질 때까지 소리를 하는 것”, 전영자씨는 “우리의 침선문화를 세계에 알려 국내외의 젊은 여성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이 꿈이다.

한혜경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들의 모습에서 차별과 억압을 견디는 용기와 건강한 자기중심성을 발견한다”며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든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며 내면에 닿으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오마주를 보냈다.


할머니가 된 여성 예인들의 꿈을 잇는 무대도 같은 날 마련한다. 심화영의 외손녀 이애리가 ‘심화영류 승무’를 선보이며, 박송희의 제자 박수정, 김선영이 남도민요 ‘성주풀이’와 ‘진도아리랑’을 부른다. 전통연희학회 너름산이 여미연 단장은 스승 최희선의 ‘달구벌 입춤’으로 무대에 올라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 이어질 예정이다.

단두대에 올라야 했던 ‘여성투표권’
프랑스 여성참정권 투쟁사 다룬 ‘페미니즘 위대한 역설’

1789년 프랑스대혁명 직후 국민의회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인권선언을 선포했다. 이 때 만인에 여성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뒤 150년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시민이었지만 정치적 권리를 가질 수 없는 시민이었다.

<페미니즘 위대한 역설>(공임순·이화진·최영석 옮김, 엘피)의 지은이 조앤 스콧은 미국의 대표적 페미니즘 역사학자다. 그는 이 책에서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난 1789년부터 프랑스 여성들이 투표권을 얻은 1944년까지 활동한 다섯명 여성참정권론자들의 삶을 추적했다.

만인의 평등을 내걸었지만 프랑스의 근대 자유공화민주제는 여성을 끊임없이 배제하려 들었고, 다섯명의 여성들은 참정권을 얻기 위해 지독하게 싸웠다. 이들은 교육받은 철학자가 아니라 주류를 벗어나 현장을 지킨 정치행동가이자 이론가였다. 독설, 아이러니, 기이한 행동은 불가피한 무기였지만 반대파에게 빌미를 주기도 했다. ‘여성은 태어날 때부터 남성이 가진 모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의 <여성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 올랭프 드 구즈는 불온한 상상력으로 자코뱅의 중앙집권주의에 반대했다며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여성은 남성과 한쌍으로 법적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했던 잔 드로앵은 세계 전복을 꿈꾼다고 비웃음을 샀다. 여성이 제대로 된 ‘개인’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보았던 마들렌 펠티에는 정신병원에 감금됐고, 위베르틴 오클레르는 “남성들과 자신을 동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병자”로 경찰 보고서에 기록됐다. 조엔 스콧은 이들이 근대적 마녀사냥의 첫 희생자인 동시에 근본적인 시민권의 딜레마를 해결하려고 싸운 인물로 평가한다. 남녀의 성차이를 부정하면서 또한 이를 받아들여야 했던 역설은 덫이었지만 그 자체가 페미니즘 투쟁의 본질적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콧은 ‘유력한 정설에 도전하는’ 역설을 대항의 전략이 아니라 페미니즘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본다.

보편적 인권 담론과 근대·자유·공화·민주주의 정치철학의 제도가 겨냥하는 인간(Man)이 남성(man)인가 아니면 보편적 인간(man)인가 하는 고전적인 물음은 21세기에 완성된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와이엠시에이가 여성에게 총회 참정권 제한을 ‘전통’이란 이름으로 고수하고 있는 것은 200여년 동안 인류가 이뤄낸 정치 철학과 제도의 균열이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한 셈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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