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7.04 16:58
수정 : 2006.07.05 14:11
2050 여성살이 /
나는 텔레비전 연속극의 왕팬이다. 그러다보니 극중 내 또래 50대 여성의 모습에 관심이 많다. 옷차림과 헤어스타일에 베낄 게 없나 싶어 유심히 쳐다본다. 문제는 대략난감한 그들의 행태. 거의 모든 연속극은 20대와 30대 청춘남녀 상열지사에 집중한다. 그들의 배경과 환경을 이루는 인물들이 중년과 노년 캐릭터들인데 주 기능은 자식들의 연애 방해 업무. 물론 모든 연애의 성취도를 높이는 건 장애물이겠다. 장벽이 높을수록, 갈등구조가 얽히고 설킬수록 젊은 주연들은 비장감 넘치는 표정연기로 순수한 사랑을 구가하며 시청률을 높인다.
그런데 극중 엄마들로 설정되는 중년여성들의 캐릭터는 대개 사랑스럽지 않다. 특히 자식들의 결혼 문제에 이르면 거의 황당한 수준의 판단력과 행동양식을 보인다. 극중 중년 남성들이 은발 섞인 머리칼과 비교적 균형감각을 지닌 인물들로 묘사되는 데 반해 그들의 배우자인 중년여성들은 극단적 사고와 언어 구사로 거의 희화화되어 있다. 극의 연장 방영을 위해 갈등 수위를 높이는 목적으로만 기용된 게 아닌가 극히 의심스럽다. 그렇지 않다면 주중과 주말연속극을 가릴 것 없이 왜 그다지도 편집증적이고 돌출 행각을 일삼는 중년 엄마 캐릭터가 필요한 것일까?
곱게 기른 자식들의 짝짓기는 물론 중요한 사안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에 목숨거는 엄마들이 그리 많을까? 자식을 위해 역경을 돌파하는 대한민국 엄마정신은 시대를 뛰어넘어 엄청 찬양된다. 그러나 자기희생의 모성애에 내장된 맹목성은 함정이다. 내 자식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지 하는 공격적 모성애는 주변 여건과 관계 인물들의 개별적 환경을 무시한 채 도발을 감행하는 행태로 묘사된다. 내 아들과 사귀는 처녀나 내 딸을 꼬드겨 낸 청년에 대한 중년 엄마들의 무례한 언행은 어이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사이를 갈라놓기 위한 그들의 음모는 그래서 왕짜증을 부른다.
대한민국 아줌마 논쟁이 한 바탕 벌어졌던 걸 기억한다.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 3의 성이라느니 예의범절과 상식을 초월할 수 있는 막무가내 집단이라는 둥 냉소와 비웃음이 쏟아졌었다. 중년 여성들인 엄마들의 캐릭터는 아줌마를 보는 사회의 시선, 그 연장선에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들딸의 결혼 조건에 목숨 거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빈번히 텔리비젼 화면에 존재한다. 그러나 중년여성들을 오로지 가족주의에 갇힌 존재로 묘사하는 건 작가들의 무사안일이 아닐까? 가장 손쉽게 갈등을 형성하는 축으로 중년 엄마를 설정하는 방식은 아줌마를 대하는 이 사회의 방식처럼 야만적이다. 그런데도 중년여성협회가 결성되어 중년여성 이미지 업그레이드를 위한 로비활동에 돌입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세력화되지 못한 중년 여성들은 선거철 각 정당들과 유통업계의 주요 마케팅 대상으로만 유의미한 집단일 뿐인가? 씁쓸하다.
내게 그렇듯 다른 중년들에게도 자식들은 삶의 한 중요한 일부일 뿐이라고 믿는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중년 엄마들에게도 찾아 내어 꽃 피울 열정이 있다는 걸 보여 줄 수는 없을까? 저녁 밥 짓다 말고 살사 스텝을 복습하는 늦깍이 댄서 지망자, 갱년기 파티에서 느닷없이 글쓰기를 결심하는 월급쟁이 아짐씨, 전업주부에서 뒤늦게 사회복지관 파트 타이머 일자리와 함께 생애 최초로 자기 이름의 은행계좌를 갖게 돼 흥분한 김 아무개, 바로 나와 내 친구들의 중년의 초상이다. 생애의 다른 연대가 그러하듯 중년 또한 꿈을 이루기 위한 모색과 방황의 연대이다. 중년 여성들의 진화하는 라이프 스타일과 사고 방식에 작가 선생들의 보다 섬세한 관찰과 정교한 묘사를 촉구한다.
박어진/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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