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라 아인혼 서섹스대 교수
“중·동유럽과 한국은 이주여성노동자를 쫓아낼 수도, 받아줄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바버라 아인혼 영국 서섹스대 여성학과 교수가 우리나라를 찾았다. 아인혼 교수는 〈유럽 여성학저널〉 공동편집인이다. 그의 책 〈시장으로 들어온 신데렐라: 중동 유럽 시민권, 젠더와 여성운동〉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중·동유럽 페미니즘 관련 저서로 인정받는다. 7월 초 성공회대, 이화여대 등에서 연 강의를 통해 그는 중·동유럽의 통합 과정과 여성 노동력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무엇보다 시장에서 먼저 여성 노동력이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아인혼 교수는 동유럽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난 ‘시장적’ 성격을 중시한다. 이번 강의에서도 그는 유럽연합 형성 뒤에 나타난 여성 노동권 문제를 강도 높게 지적했다. 그는 “국경을 넘어서서 재화가 자유로이 움직이는 데 비해 이주 여성노동자들은 불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각 국가가 노동시장에서 제외된 여성들을 다른 나라로 내보내는 데 앞장서지만, 정작 다른 나라로 옮아간 이주 여성노동력은 언제나 불법노동력이 된다는 얘기다. “유럽연합은 시장에서 남녀간 평등조건을 만들지 않았고, 불법 여성 이주노동자를 양산했다”고 밝혔다. “유럽이 통합되면 남녀평등적인 정책이 펼쳐지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기대 이하였죠.” 유럽연합 정책은 전체적으로 경제적 이해에 기초해 있는데, 여기서 성평등 정책은 주변화되었으며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점점 더 불리해졌다. 설상가상 시민사회단체나 운동가 출신 여성관료들의 성장도 여성의 정치·경제적 권익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그는 본다. 남성 중심의 정치권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여성관료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성들의 정치·경제 조건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한국도 유럽연합과 비슷한 길을 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여성 이주노동자 없이는 한국 경제가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울 겁니다. 여성들이 시장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국가는 그 영향력을 무시하기 힘들 겁니다.”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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