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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7.25 17:11 수정 : 2006.07.25 17:11

고종 정비로 을미왜변에 희생된 명성황후는사진을 찍었을까? 몇몇 사진을 두고 이것이 바로 명성황후다, 아니다, 궁녀다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주인공.

그의 시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나, 남편 고종, 그의 친아들 순종, 그 외에 영친왕 의친왕 등 조선말-대한제국 시기 조선왕실 주요 인물의 사진 자료는 흔한 데 비해 명성황후는 아직까지 확실한 실제 모습을 알 수가 없다. 물론 명성황후라는 주장이 있는 사진은 간혹 있으나,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가 않다.

이런 와중에 미국에서 명성황후가 주인공이라고 추정되는 자료가 공개됐다.

이번 사진이 명성황후인지 아닌지를 확정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하나 확실한 것은 명성황후는 사진 모델로 나서기를 좋아하지는 않았으며, 그렇기에 생전에 아예 사진을 찍은 적이 없거나, 있었다 해도 몇 번 되지 않았으리라는 점은 확실한 듯하다.

같은 시대를 산 다른 왕실 가족들은 사진 모델로 기꺼이 나선 데 비해, 명성황후는 왜 이런 일을 꺼려했을까?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단순화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나 순종비인 윤비 등의 사진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의친왕의 손자이자 국립고궁박물관 전문위원인 이혜원(51) 씨는 다소 흥미로운 증언을 들려주었다.

"연세 여든이 넘은 집안 고모들에 의하면 명성황후는 얼굴에 곰보 자국이 있어 나서기를 싫어했다고 합니다. 마마 자국 같은 게 얼굴에 있었다는 말이지요. 물론 이런 말씀을 해 주시는 고모님들도 어릴 때 집안 어른들께 전해 들은 이야기니까,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요."

그는 연합뉴스를 통해 미국에서 25일 공개된 명성황후 추정 사진에 대해서는 "(흥선)대원군 할아버지의 첩인 초선일 가능성도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그러한 근거로 이 사진과 함께 공개된 이하응 사진과 비교할 때, 사진 배경이 거의 똑같다는 점을 주목했다. 즉, 사진 속 '명성황후 추정 인물'과 이하응이 의자에 앉은 채 디딘 카페트라든가, 그 뒤를 장식한 장막 등이 같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씨는 이 사진 속 이하응이 청나라 복장을 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임오군란 이후 청에 끌려갔다가 귀국한 뒤 그가 운현궁에 기거할 때 찍은 모습으로 판단되며, 이 당시 초선이란 여인이 그를 시중들었다는 기록을 감안할 때, 그럴 가능성도 내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명성황후의 실제 얼굴이 어떠했는가 하는 문제나 논란은 좀 더 확실한 자료 출현을 기다려야 하는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김태식 기자 taeshik@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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