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나에게 내 친구중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얘, 애가 칠칠치 못하게 젖을 그러구 털럭거리구 다니니!' 그러면 나는 이런다. '남의 털럭거리는 가슴 신경쓰지 말고 니네 남편 딸랑거리는 그거나 신경써!' 내 가슴은 A 컵으로 아담사이즈다. 걷거나 뛰어도 그다지 털럭거리지 않는 사이즈다. 털럭거리고 안거리리고는 둘째치고 성격상 나는 갑갑해서 부라자를 차고 다니기가 싫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볼 때도 브래지어를 차고 다니는 것은 엄청난 가정경제의 손실이다. 그 손바닥만한 것은 얼마나 비싼가. 일반 면티의 두배값이다. 그런 것이 비싼 값을 한다고 세탁기에 넣어 돌릴 수도 없다. 손으로 삭삭 빨아 뽕이 들었을 때는 뽕빼서 널어야 한다. 이 얼마나 경제적 시간적인 낭비인다. 길거리에서 만난 여자들에게 대고 한번 물어보라. 자신의 의지로 브래지어를 차고 다니는지. 아마도 과반수가 훌쩍 넘는 여자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차고 다닐 것이다. 솔직히 털럭거리는 걸로 따지자면 남자들의 쌍방울이 여자들의 가슴보다 강도가 쎌 것이다. 운동복 입고 조깅하는 남자들, 볼려고 본 건 아니지만 솔직히 중간부분 심히 눈에 띄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투선수가 링위에 올라갔을 때를 제외하면 거들 비슷한 걸 입는 남자 하나도 없다. 이 현상에 대해 남편에게 의견을 불어봤더니 심각하게 생각한 뒤 아래와 같이 대꾸한다. '가슴은 눈높이에 달렸잖아!' 눈높이에 달린거 좋아하시네.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건가? 조선시대만 해도 여자들의 가슴은 남자들에게 성적인 자극을 주는 부위가 아니었다는 것. 그래서 아들낳은 여자들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내놓고 다녔다는 것. 그리고 현재도 아프리카나 아마존강 유역의 여자들은 가슴을 내놓고 다닌다는 것. 그러니 눈높이 어쩌구 하는 건 낭설이다. 필시 브래지어는 서양에서 건너왔을 것이다. 이름만 봐도 서양이름이다. 서양여자들은 가슴이 크니까 브래지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독일 여인들의 체형을 자세히 살펴보면 딱 브래지어의 필요성이 느껴진다. 3,40대 독일 여성들의 경우 가슴이 어깨와 허리 중간에 위치한 경우가 보통이고, 50대가 되면서 점점 처지다가 60이 넘어서는 허리 조금 위까지 가슴이 처지게 된다. 나는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때 젖가슴을 밥상 위에 올려놓고 밥먹는 할머니들을 많이 보아왔다. 이럴 경우 브래지어는 필수라 하겠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인들을 보라. 가슴이 위로 봉긋 올라붙었을 뿐 아니라 대부분 A컵이니 그다지 털럭거리지도, 밥상위에 올려놓을 일도 없다. 결론적으로 브래지어를 차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비너스여, 비비안이여 미안하지만 이렇게 말해야 겠다. '여인들이여 브래지어를 벗어던져라!.' '벗어던지라구!' 근데 아무도 안벗는다. 6,70년대 미국의 여성운동가들이 브래지어를 벗어던지자 구호를 외치며 브래지어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쉽게도 일반 여인들의 참여가 없는 자기들만의 퍼포먼스일 뿐이었다. 외려 브래지어는 그 이후 전세계로 퍼져나가 세계 오지 여인들의 애장품이 되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마음이다. 이에 나는 한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 일에는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여자가 나서야할 것 같다. 이를테면 힐러리 클린턴이나 앙겔라 메르켈이 공익광고에 출연하는 거다. 무료로. 아, 미안하다. 모델을 바꿔야 겠다. 이들은 아무래도 브래지어가 필요할 것 같으니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사이즈가 조금 작으신 권양숙 여사가 좋겠다. 노브라에 쫄티를 입은 권양숙 여사, 화려하게 스포트 라이터를 받으며 무대위로 올라간다. 무대 아래의 수많은 남성들이 울부짖으며 환호한다. 그중 몇몇은 흥분한 나머지 실신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래로 자막이 천천히 흘러간다. '노브라, 쿨한 당신`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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