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성폭력 피해생존자 말하기 대회’는 처음으로 실내가 아닌 바깥에서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행사의 기획에 참여한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 왼쪽부터 어린, 거북, 지선, 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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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밖으로 나온건 올해가 처음
원하면 즉석참여 할 수 있어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여는 이 행사는 오는 12일 오후 4시부터 서울 성균관대 운동장에서 막을 올린다. 이번 행사를 진행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가들은 긴장과 기대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올해 행사는 처음으로 실내가 아닌 건물 바깥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지선, 오매, 거북, 어린(상담소에서는 이름보다 별명을 부른다) 등 이번 행사의 주축인 4명의 활동가는 부담감도 큰 듯했다. “가장 큰 특징은 처음으로 ‘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점이죠. 3회 때까지는 무대가 있는 공연장 등을 빌려 참가신청을 한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해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했어요.”(지선) 예전엔 ‘안전한 공간’에서 말하기를 원하는 참가자들의 요구가 컸다. 남성 참여자 때문에 말하기 거북하다며 항의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올해는 다르지만 지난해까진 말하기와 듣기 신청자들을 따로 받았다. 피해를 증언하는 이들에 대한 비난이나 돌출 발언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듣기 신청자들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았다. 행사 일시와 장소도 비밀이었고, 취재와 연구 목적의 참관도 불가능했다. 올해는 다르다. 더 크게 열린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로 했다. 참가 신청서를 따로 받긴 하지만 성폭력의 경험을 말하는 사람과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구분이 없다.
“말하는 순간이 바로 치유의 시작입니다. 가해자를 향해 욕도 하고, 분노를 표출하고, 같이 소리질러보는 마당이 필요합니다.”(오매) 이들은 ‘피해자’란 말 대신에 ‘생존자’란 말을 쓴다. 소극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존재로 상처 아닌 상처에서 벗어난다는 뜻을 강조하려고다. 이들은 “경험을 말하고, 듣고, 지지받는 경험만으로도 치유받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다독이는 말 한마디로도 “내 잘못” “나만 문제”라는 생각에서 탈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트 성폭력, 강도 강간, 친족 성폭력, 술자리 성폭력, 어린이 성폭력 등 수많은 ‘성폭력 피해생존자’들의 ‘다양한 생존 방법’을 공유할 수도 있다. 다만 걱정도 있다. “얘기의 물꼬를 먼저 트는 것이 중요하겠죠. 계획이 없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죠. 많은 여성들이 모여서 얘기하는 만큼 힘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거북) 사실 올해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 행사를 ‘소규모 집단 치유’ 형식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열린 목소리’를 중요하게 생각할지에 대해 오래 토론했다. 결국 열린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기로 했다. 물론 이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는 광장이 될 수 없다. 명동 한복판이나 시청 앞 같은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좀더 열린 행사를 하기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건물 안에서 밖으로 나온 것만도 큰 진전이다. 어린은 “밀실에 혼자 갇혀있지 않고 세상을 향해 자신의 피해와 분노와 아픔을 외치는 일은 극복과 성공의 경험을 동시에 가져다준다”고 말했다. 올해 행사 참가자 규모는 200~300여명 남짓. 매년 조금씩 참가인원을 늘려왔다. “복수하는 여자는 나쁜 여자, 참는 여자는 훌륭한 여자”라고 내면화한 한국 여성들을 모아 광장에서 말하기 행사가 가능할지 고민했지만 이제 여건이 성숙됐다는 믿음도 있다. “두렵기도 하고, 주저하는 사람도 있을 테죠. 세상에 진실을 알릴 필요가 있어요. 말하지 않고는 무엇이 문제였는지 해결방법과 필요성을 알 수 없으니까요.”(어린) ‘통곡의 바다’를 이뤘던 지난 대회에 비해 이번 대회 때는 ‘힘’과 ‘재미’를 덧붙일 계획이다. 성폭력 피해 경험에 대한 다양한 해결방법도 모색할 계획이다. 깊은 밤이 되면, 행사장에서 조촐한 뒤풀이도 연다. 문의 speakout2006@hanmail.net 글·사진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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