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2 16:53
수정 : 2005.03.02 16:53
초등학교 2학년인 딸애가 쪼르르 달려와서 내게 이런 얘길 했다. “엄마, 음악방송에서 채연이란 가수의 뮤비(뮤직비디오) 봤는데 진짜진짜 야하다. 너무 무서워서 눈 가리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야하길래 무섭다는 표현을 쓸까.
음악전문방송들은 하루종일 인기가수의 뮤비를 방영하기 때문에 채연의 뮤비 역시 몇 번씩 볼 수 있고, 시청자는 성인이 아니라 방학을 맞은 우리 딸애 같은 어린이거나 청소년일 터이다.
채연은 그전부터 나도 이미 알고 있던 가수였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솔직하고 꾸밈없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녀가 어느새 섹시컨셉 노래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단다. 각종 음악사이트 연속 5주 1위, 음악방송인 m-net 가요 순위프로그램 1위, 군인들 대상 설문조사 인기 1순위 등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2집 음반 타이틀곡 <둘이서>의 뮤비는 과연 야했다.
요즘은 유니라는 가수도 같은 이미지로 주목받고 있다. 음악방송의 공연에서 채연과 유니가 경쟁적으로 선정적인 춤을 췄다는 것이 뉴스가 되기도 했다. 채연은 반라의 모습으로 남자댄서와의 밀착댄스를 선보였고, 유니는 무대에 설치된 봉을 잡고 춤을 췄다나 어쨌다나. 한동안 여자연예인들의 누드화보집이 화제가 되더니 이젠 가요계에도 누드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이효리, 바다, 보아 등의 가수들이 이미 섹시컨셉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선례가 있지만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성공을 향한 여성들의 몸부림이 안쓰럽게 느껴져 신랄한 비판을 하기도 안타깝지만 과거와, 그리고 외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조악함에 마음이 상한다. 왜 대한민국 여성아티스트들이, 여자연예인들이 그런 모습으로 우리를 향해 웃고 있는가?
거기엔 남성의 관음증이 있었고, 여성의 등뒤로 흘러내리는 옷자락과 너무 낯익은 선정적인 속옷과 가죽옷과 농염한 눈빛과 몸을 꼬는 교태가 있었다. 침대에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여자, 하늘거리는 속옷 사이로 드러난 다리와 허벅지, 묶여 있는 여자, 울고 있는 여자, 얼굴이 드러나지 않는 남자에게 뒤로 안겨서 흥분하는 여자…. 그 모습은 과거 <플레이보이>나 60~70년대 달력에나 등장하던, 그리고 지금도 지치지 않고 보내오는 음란성 메일에서 지겹도록 보고 있는 너무나 익숙한 여자들의 모습이다. 그것은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 속의 여성들이며, 더 가혹하게 평가하자면 성폭력과 성매매의 음험한 기운까지 감지된다. 그런 이미지들이 모바일을 통해, 위성방송과 음반을 통해 돈과 교환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의 성적인 자기 권리와 자유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쪽의 시선만이 과대포장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왜곡이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지만 표현물에 대한 비판까지 포기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다.
글/박미라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위원
gamoo21@hot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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