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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29 18:26 수정 : 2006.08.30 15:22

2050 여성살이 /

초등학교 6학년짜리 조카가 첫 생리를 시작했다. ‘차세대’의 첫 생리를 맞이한 가족들의 반응은 실로 다양하다. 엄마보다도 먼저 딸의 생리 사실을 알아차린 아빠는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성인이 되어 만난 아내야 이미 진행 중이었으므로 당연히 여자는 그러는 줄만 알았는데, 자기 손으로 기른 딸의 몸에 변화가 온다는 것에 우주적 진실을 알아낸 것마냥 기쁘다. 지난해에 폐경을 맞이한 할머니는 “뭐가 그리 급하다고 그 귀찮은 것을 벌써 시작하냐”며 걱정이 앞선다. 조심해야 될 것도 많고 귀찮은 일도 많은데 조금이라도 늦을수록 편할 거라는 맘이다. 엄마야 물론 기쁘고도 슬프다. 생리란 딸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는 증표이므로 기쁘고, 여자로서 살아가기 위해 조심해야 할 일이 늘어나 한편으로는 슬프다.

어쨌거나 우리는 조카의 첫 생리를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고, 예쁜 천으로 손수 만든 면 생리대와 주니어 브라-팬티 세트, 너무 조이지 않는 거들을 선물했다. 나름대로 부산을 떨며 경험의 한 단편을 꺼내 보이는 어른들이었건만 주인공은 의외로 덤덤하다. 다른 애들도 다하는 것이 뭐 그리 대수냐는 반응에 어른 여자들은 좀 무안해졌다. 그러면서도 생리라는 경험이 어떤 식으로든지 의미화되기 이전의 저 무덤덤함은 필시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든 세대들처럼 생리를 ‘여성이 되어가는 것’에 대한 불길한 징조로 느끼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지 싶다.

내가 첫 생리를 시작할 때도 엄마는 조카에게 했던 말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하셨다. 여자의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게 얼마나 험난한 일인지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을 지금이야 이해하지만, 몸의 특정 부위에서 피가 계속 나오는 상황만으로도 무척 당황했을 어린 소녀에게 엄마가 이야기하는 ‘세상의 무서움’은 검붉은 피처럼 끈적거리며 몸에 각인되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사 시간마다 선생님은 “생리하는 여학생들은 표시 나지 않도록 거들을 착용하라”고 협박하셨다. 발육이 빨라 남들보다 일찍 생리하는 친구들은 상담의 대상이 되었다. 집이나 학교에서도 생리란 여성성의 기쁨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슈퍼마켓에서도 생리대는 늘상 검은 비닐봉지 속에 싸인 채 아무도 모르게 후다닥 사라져야 하는 물건이었던 것이다.(지금도 검은 봉지만 보면 생리대가 들어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조카의 첫 생리를 맞이해 어른 여자들이 파티를 열고 선물을 주는 호들갑을 떠는 것은 순전히 이런 자기 경험 때문이다. 생리가 최소한 여성성을 부정당하는 경험이거나 여자로 사는 귀찮음으로 여겨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인 것이다. 첫 생리의 신기함을 마음껏 누리지 못했던 여자들의 마음을 조카가 헤아려 이해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그 무덤덤함이 자신의 여성됨을 긍정하는 차세대의 방식이 되기를 소원할 뿐이다.

정박미경/자유기고가 chaos400@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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