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9 17:04
수정 : 2005.03.09 17:04
박홍규 교수(53·영남대)는 특이한 법학 교수다. 전 세계의 미술관을 거의 다 다닐 정도로 여행을 즐기지만 국내에서는 비행기와 고속전철을 거부하며 ‘느린 삶’을 신봉하고 휴대폰과 승용차를 거부할 정도로 검소하고 원칙에 충실하다. 50권이 넘는 그의 저서나 번역서는 전공인 법학보다 미술, 클래식 음악, 문학, 사상서 등에 더 치중해 있다. 게다가 지적 재산권을 거부하고 출판문화를 부흥시키는 데 보탬이 되려고 영세한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거의 모든 책의 인세를 받지 않는다. 말 그대로 ‘괴짜 교수’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는 원칙을 지닌 사람이다. 특히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하다. 그는 왕이나 귀족에 대한 통쾌한 비판을 담고 있는 토머스 페인의 <인권, 상식>을 어린 시절에 읽고는 왕족이 나오는 동화나 사극이 시시해졌다고 한다. 그는 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극에 환호하는 현상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극에 열광하는 국민들을 보면서 아직도 이 땅이 조선 왕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반문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박 교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호주제로 대표되는 봉건적, 반민주적 사회구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호주제 폐지를 누구보다 환영했다. 대개는 이혼한 부모의 자녀 문제나 성 문제로 인한 차별이나 불편함을 들어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지만, 박 교수는 우리 사회의 반인권적인 크고 작은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소되기 위해서는 봉건적 사회구조가 무너져야 한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그는 “우리가 지난날 공적인 영역에서는 국가보안법에 의해, 사적인 영역에서는 호주제에 의해 고통을 당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못했다. 호주제는 국가보안법이 상징하는 가장 반민주적인 체제의 최소 단위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는 호주제 자체가 사적인 국가보안법이었다고 본다. 그런 까닭에 호주제 폐지에 기뻐하면서도 이 문제가 제도의 개선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고 본다. 호주제 폐지가 실질적인 봉건구조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으려면 아직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란 얘기다. 봉건구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인권도 없다. 적어도 박교수에게는 그렇다.
지강유철/<안티 혹은 마이너> 지은이
j33luk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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