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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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기업 고위직 진출 ‘좁은길’ 여전
우리나라가 국제적으로 삶의 질 수준이 높지 않을뿐더러, 여성의 권한은 더욱 적은 사회적 불균형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일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2006 인간개발 보고서’를 <한겨레>가 재분석한 결과 ‘인간개발지수’(HDI: Human Development Index=삶의 질 지수)에서 조사대상 177개 나라 가운데 노르웨이가 1위를 차지했다. 이 나라는 여성의 사회적 권한과 경제적 지위를 나타내는 ‘여성권한척도’(GEM: Gender Empowerment Measure)도 똑같이 1위였다. 종합적인 삶의 질 측면과 남녀 지위 측면이 균형을 이룬 셈이다. 삶의 질에서 2위인 아이슬란드는 여성권한척도에서 3위, 삶의 질이 5위인 스웨덴은 여성권한척도에서 2위 등으로 대부분 ‘균형 사회’ 성격을 나타냈다. 반면에 한국은 삶의 질(=인간개발지수)이 26위인 데 견줘 여성권한척도는 53위에 머물렀다. 남녀가 고루 교육을 받아 인적 특성·능력개발은 이뤄졌는데도, 여성이 실제로 누리는 정치·경제·사회적 지위나 활동의 수준은 대단히 낮다는 의미다. 이는 불균형 사회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여성권한척도: 국회 여성의석 비율, 입법·고위임직원 및 관리직, 여성전문 기술직 여성비율, 남녀소득비를 종합해 여성 지위를 볼 수 있는 수치.
* 삶의 질 지수(인간계발지수): 평균수명, 교육수준, 문자해독률, 국민소득 등을 종합해 전인구의 삶의 질을 볼 수 있는 수치 |
여성권한척도는 정치·경제 분야의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성이 참가한 몫을 지표로 만든 것이다. △여성 의원 비율 △입법·행정 고위 임직원 및 관리직 여성 비율 △전문기술직 여성 비율 △남녀 소득비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우리나라는 이와 관련해 여성 의원 비율은 13.4%(전체국 평균 18.54%), 여성 행정관리직은 7%(〃 28.30%), 여성 전문기술직은 38%(〃 48.48%), 남녀 소득비는 0.46(〃 0.53)이었다. 이는 역사적으로 종교나 문화의 영향을 받아 남녀 차별의 경향이 있는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일본과 아일랜드도 불균형 문제점을 드러냈다. 일본은 삶의 질에서 7위이면서 여성권한척도는 42위였다. 아일랜드는 삶의 질 4위, 여성권한척도 17위였다. 교육과 가사 참여도 등에서 남녀 차별의 전통이 강한 나라들이다.
한국의 여성권한척도를 낮춘 가장 큰 원인은 여성 관리직 비율 때문이다. 정부와 각종 의회, 그리고 기업의 고위임원 등이 해당되는데, 이는 결혼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탓으로 풀이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성별 고용평등 지표에서도 지난해 여성 관리직 비율은 남성이 100일 때 여성은 8.1에 그쳤다. 성별 고용평등 지표는 55.7로 여성의 고용상 지위가 남성의 절반에 불과했다. 엘지경제연구원의 배민근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30∼34살 및 35∼39살 연령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부담으로 인해 경제활동참가율이 특히 낮은데 이런 경력단절은 여성의 관리직과 고위직 진출을 막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며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 연구원은 “과거에는 여성이 교육을 받지 못해 사회적 격차가 나타났던 것과 달리, 이제는 교육을 충분히 받았는데도 사회적 진출이 덜 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전체 삶의 질보다 여성 권한이 더 높은 나라는 벨기에, 독일 등이었다. 벨기에는 인간개발지수가 13위, 여성권한척도가 5위였고, 독일은 각각 21위와 9위로 나타났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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