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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02 18:03 수정 : 2005.01.02 18:03

1977년 전체인구 5%…미군철수로 감소
지금은 동남아·러시아 여성들 자리매워

김병섭씨 석사논문서 추정

1960~1970년대 ‘기지촌’의 대명사였던 경기 동두천시(당시 양주군 동두천읍)의 성매매 여성 수는 얼마나 됐을까?

동두천 지역활동가 김병섭(28)씨는 최근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에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에서 1965년에서 1980년까지 동두천 윤락여성의 수를 “2천명에서 2700명 사이”라고 추정했다. ‘성매매 처벌 특별법’이 시행되기 전 서울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성북구 하월곡동 88일대 이른바 ‘미아리 텍사스’(업소 250여개·종사여성 1천여명)보다 2~3배 큰 규모다.

동두천 문화원이 지난 2002년 펴낸 <동두천 지방 행정사>를 보면, 동두천의 성매매 여성은 1965년 2천명에서 1977년 2707명으로 늘어 정점을 이뤘다. 당시 동두천시의 인구수가 6만명 안팎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인구의 4~5%가 성매매 여성이었다는 추론이 가능한 셈이다. 김씨는 “1970년대까지 미군과 한국 성매매 여성의 비율은 미군 5명에 성매매 여성 1명 꼴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978년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시키면서 성매매 여성 수는 1978년 2089명에서 1979년 2056명, 1980년 1997명으로 감소하기 시작한다.

강홍구 동두천시민연대 대표는 “80년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거치면서 달러 가치가 많이 떨어져 기지촌 여성들이 다른 한국업소로 전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1992년 터진 ‘윤금이씨 살인사건’ 등 성매매 여성들을 상대로 한 잔혹한 범죄가 잇따른 것도 ‘기지촌 여성’ 수를 줄이는 데 한몫했다.

시민연대 쪽은 이제는 기지촌을 필리핀·러시아 여성 500여명이 들어와 메우고 있으며, 한국인 여성들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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