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된 여성가족부의 인터넷 이벤트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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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방식 선호 이벤트 번번이 말썽
여성가족부가 연말 회식 뒤 성매매를 하지 않겠다고 서약한 이들에게 회식비 현금 지원을 하겠다며 벌인 이벤트가 말썽이 됐다. 여론의 맹공 가운데 여성가족부의 설명자료가 언론사에 배포됐다. 여성가족부는 언론의 비난에도 이벤트를 지지하는 여론 또한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몇몇 언론은 이벤트 논란에 반대 여론만 있고 찬성 여론은 없다며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어느 쪽이 진짜일까? 언론 접근방식도 문제…정작 여성인권과 폭력 고려는 없어 한가지 목소리만 있는 논란은 없다. 다른 목소리가 궁금했다. 20대 여성인권지원활동가는 “이 논란은 성매매문제의 본질인 여성의 인권과 폭력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고 했다. 30대 여기자는 “선정적인 이벤트에 대한 비난을 지나 ‘남권침해’ 주장까지 이르니 황당하다”고 했다. 40대 여성학자는 “이벤트 자체는 촌스럽고 거친 면이 많지만 이 논란이 성매매방지법 흔들기까지 나아가는 건 매우 지나치다”고 했다. 언론의 향방이 ‘성매매방지법 흔들기’를 거쳐 ‘정권 흔들기’까지 염두에 둔 정치적인 노림수가 보인다는 얘기다. 여성학자 “이벤트 촌스럽지만, 성매매방지법 흔들기는 지나쳐”28일 ‘성매매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도 논평을 냈다. 이들은 여성가족부의 선정적인 이벤트, 언론의 성매매방지법 흔들기 모두 비판했다. 연대는 논평에서 “마치 성매매문제를 술자리에 안주거리로 전락시키면서 일회성 이벤트로 행사로 만들어버린 접근방식과 안이한 태도에 대해 강력하게 유감을 표한다”며 “여성가족부의 캠페인성 이벤트 행사의 진위와 내용을 중심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남성 모두를 잠정적인 성구매자로 취급하는 듯한 행사처럼 보도하고 있는 언론의 문제접근방식도 문제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성적 착취 행위로 심각한 범죄행위”라고 밝혔다. 그들 말대로, 지금 논란에서는 성매매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여성인권과 폭력의 문제를 말하는 이가 없다. 단, 대다수 국민들이 여성가족부의 성매매방지 캠페인에 대해 ‘방법상 문제’가 있다는 데는 동감하고 있다. 이 점이 바로 이벤트를 찬성하는 이들이나 반대하는 이들이 유일하게 의견의 일치를 보는 대목이다. 목적에 대한 논란은 일단 놔두더라도, 방법상 문제가 있었다는 거다. 사실 여성가족부가 성매매방지이벤트를 할 때 ‘방법’에서 미묘한 말썽이 생긴 경우가 여러번 있었다. 이 가운데 하나가 12월 들어 전파를 타기 시작한 캠페인 라디오 광고다. 뉴스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나오면 남자 앵커가 “연말 뉴~스!”라고 알린다. “반복되는 송년회로 술자리가 이어지는 요즘, 예년과 달리 성매매업소에 발걸음이 뚝 끊어졌다고 합니다. 이같은 현상은 가정을 먼저 생각하는 풍토가 확산되고 성은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그뒤 나레이션이 나온다. “이런 뉴스, 듣고 싶지 않으세요? 성매매, 있어선 안 될 범죄입니다.” 광고주는 여성가족부다. 언뜻 보기엔 남성들의 건전한 성문화를 독려하는 내용이라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다른 의견도 있다. 성매매 문제를 굳이 정부 부처가 가정 사랑과 결부시켜 미리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물론 건전한 성문화·성의식 개선은 여성가족부가 적극 나서야 할 정책적 목표라지만 너무 ‘건전성’만 강조하면 사적 영역에 대한 침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성매매방지가 곧바로 가장의 이른 귀가로 이어질지도 미지수인 데다, 거꾸로 가장이 가정을 먼저 생각한다고 해도 이런 행동이 성매매 축소로 이어진다는 근거는 없다는 지적이다. 이 얘기를 들은 부처 담당자는 분명하게 각을 세웠다. 그는 “성매매방지와 가정의 화목을 아울러야 하는 부처 특성상 우리 부처는 가장의 음주, 성매매방지, 가정화목이 직결돼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시각에 한 여성학자는 “아무리 얘기해도 여성가족부 공무원들은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여성가족부 담당자들에게 교육이라도 확실히 시켜야 할 판”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세밀한 검증 없이 선정적이고 튀는 방식 선호 실은 지난달 여성가족부가 준비한 다른 라디오 성매매방지 캠페인 광고가 있었다. 심의기구는 “표현이 설령 공익적인 내용이고 목적이 좋다고 할지라도 수단 자체가 특정 성을 비하하고 여성을 물건 취급하듯 하는 표현에 해당되므로 인간의 존엄성 및 생명을 경시하는 규정에 저촉된다”고 판단하고 수정을 지시했다. 이에 여성가족부가 표현을 바꿔 방송하려다 결국 제동이 걸렸다. 광고를 내보내기 직전, 최종 문구를 본 장관이 이에 대해 “도전적이고 표현이 너무 거친 데다 필요치 않은 시빗거리를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다른 문구를 새로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부처 안에서 장관 말고는 아무도 이런 여성비하적 표현에 제동을 건 이가 없었다. 성매매방지 캠페인 라디오 광고의 해프닝을 단순한 실수나 착각으로 보기엔 어렵다. 지난해 가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는 거리에서 성매매방지 선전물인 사탕과 엽서를 나눠줬다. 선전물엔 ‘모든 여인을 품을 수 있는 자유, 그러나 한 여인을 사랑할 수 있는 나의 선택’ ‘금요일 저녁은 아내와 함께 영화감상하는 날’ ‘사랑은 오직 한 사람과’ ‘몸과 마음 모두를 아내에게 올인합시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때 여성가족부는 ‘모든 여인을 품을 수 있는 자유’라는 말이 자칫 남성에게 잘못된 성관념을 유포시킬 수 있는 ‘위험한’ 표현이고, ‘몸과 마음 모두를 아내에게 올인합시다’는 문구는 아내가 없는 남성들을 제외시켜 정책대상자를 지나치게 제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너무 사소한 지적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릇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책을 시행할 땐 사소한 미비점, 소수를 고려하느냐 마느냐 하는 ‘작은 차이’가 자주 ‘명품정책’과 ‘폭탄정책’을 가늠짓는 잣대가 되곤 한다. 2005년 나눠준 광고는 “모든 여인을 품을 수 있는 자유…아내에게 올인합시다” 물론 모든 대국민캠페인 내용을 일일이 장관이 손수 챙기긴 어렵다. 장관이 직접 챙기고 말고는 별반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온라인이나 라디오 등을 통한 대국민홍보는 불특정 다수가 접할 수 있다는 특성을 지닌 소통방식이기에 좀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지점이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거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 여성가족부 안의 ‘성인지적 시각’이나 정책검증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생긴다. 공무원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성인지교육과 성인지예산편성을 주도하는 여성가족부가 세밀한 검증 없이 선정적이고 ‘튀는’ 방식을 선호하다보면 이번처럼 불필요한 오해를 사거나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여성가족부 주변에는 성인지적 관점이 투철한 전문가 집단이 얼마든지 있다. 이들에게 자문하거나 협의하는 공무원 한명만 있었더라도 대국민홍보문구 때문에 생기는 논란은 피해갈 수 있지 않았을까. 성매매방지법에 대한 홍보와 시행은 어떤 정책보다 세심한 지혜와 정공법이 필요한 부분이다. ‘STOP! 성매매’(여성중앙인권지원센터의 구호)란 문구가 ‘사랑은 오직 한사람과’라는 말보다 튀진 않지만 더 강력하고 정직하다. 내년 여성가족부의 예산이 최초로 1조원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성매매·홍보 예산을 포함한 성매매 방지 및 피해여성 보호 예산이 60억원에서 71억원으로 늘었다. 여성가족부 초기의 모습이 떠오른다. 200여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신생부서’ ‘초미니부서’여서 하는 일마다 딴죽이 걸렸다. 지금은 너무 당연해진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한 결정 하나만 하더라도 ‘여성부가 무슨 성폭력해결부냐’ 하는 비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지금 여성가족부는 ‘초미니 신생부서’가 아니다. 예산 1조원 여성가족부 더이상 ‘초미니 신생부서’ 아닌 만큼, 정책 무게 있어야 26일 기자간담회에서 장하진 여성가족부 장관은 “내년 부처 혁신의 주요 키워드를 ‘학습을 통한 혁신’으로 삼으려 한다”며 “앞으로는 여성가족부가 엔지오와 여성학자보다 앞서 여성정책을 끌고가는 집단이 돼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했다”고 말했다. 여론의 질타와 공격 가운데 정책을 수행해야 할 여성가족부가 부디 성인지적 관점을 가지고 21세기적 여성정책에 대한 앞선 전망까지 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지금의 모습만으로는 그 앞선 전망을 고대하기에 무리가 있다. 1조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성인지적관점에 맞게 사용하려면 먼저 철저한 자기 관리와 조직적 준비가 더욱 필요하다. 그런 까닭에, 여성가족부가 새해부터 타 부처를 대상으로 실시하겠다는 ‘공무원 성인지교육’을 먼저 내부에서 작지만 철저하게 시작했으면 한다. 여성가족부의 진정한 경쟁력은 능력개발이 아닌 성인지력에서 나와야 한다. 여성가족부 장관은 “참여정부 초기 노무현 대통령이 경상도 남자이기 때문에 여성정책을 진행하는 데 무리가 따를 것이라는 우려를 했던 일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최근 참여정부의 여성정책에 대한 3권의 책을 발간하면서 감회가 남달랐다는 얘기다. “성매매 방지 홍보에 대해서는 보수적으로 시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장관은 말했다. 그가 말하는 ‘보수’가 ‘정공법’의 길을 뜻한다면 좋겠다. 소수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치열한 검증이야말로 ‘진보’의 길이라는 생각이다. ‘튀는 진보’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진보’를 위한 치열한 고민과 배려가 깃든 행정의 결과물을 내년엔 만나볼 수 있었으면 한다. <한겨레>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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