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02 17:43
수정 : 2007.01.0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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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어진의 여성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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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어진의 여성살이 /
여자 10명이 모였다. 하는 일은 제각각에 나이도 3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까지. 모임은 어찌 보면 별 것 아닌 일을 자축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업적은 살아남았다는 것. 대단하다. 일터에서의 노동뿐이랴? 남편과 아이, 집안 어른들은 물론이고 기타 수평적이고 수직적 관계에 있는 등장인물들과 반려 동물들에게 한 감정 노동까지 우린 혼신의 힘을 다했다.
실수로 점철된 한 해의 총 정리가 시작된다. 각자 얼마나 얼빠진 순간들이 많았는지를 홍보하고 스스로를 웃음꺼리로 내놓는다. 바보짓 일수록 환호와 갈채. 누구는 출장 가는 날 아침 사무실 주차장에서 넘어져 갈비뼈 세 대에 금이 갔다. 고통스럽게 숨쉬며 일주일 출장을 다녀와서야 병가를 냈다. 누구는 공항에 딸 마중을 갔다가 지갑을 잃어버려 뒤처리에 끙끙댄다. 누구는 “새해에는 모든 게 잘된다”는 손금전문가의 예언을 자랑하는 한편 오십견 때문에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왼팔을 휘두르며 대책 마련을 호소. 즉각 ‘구연산’ 처방전을 제공받는다. 엔지오 활동가는 칼바람 속 집회에 참석하느라 걸린 감기로 평소와 달리 목소리가 섹시하다. 일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니 직장 성희롱에 대한 남녀 인식 차이에 대한 토론도 이어진다. 30대, 40대, 50대의 관점이 때로 충돌한다.
남자들은 오랫동안 여자들의 우정을 비웃어왔다. 학연, 지연, 혈연의 위계 서열적 유대와 군대의 전우애까지, 진정한 우정은 와이(Y)염색체에 고유한 형질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여성의 적은 여자’라는 낡은 미신을 타파하는 데서 이제 여성들의 우정은 시작되는 것 같다. 사회에 드문 칭찬과 격려로 서로를 치켜세우고 무참히 저지른 실수도 만회 가능한 것임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언니들의 연대다. 나이와 경력순의 남성적 위계질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서로 평등한 관계와 교감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실패의 경험을 나누며 선후배간 서로 멘토가 되는 그런 상호의존 관계.
언니들의 연대는 정서적 지지를 넘어 조직내 인간관계 전략과 솔루션에 대한 비교분석까지, 포괄적 지식과 지혜가 공유 가능하다는 걸 알려준다. 다양한 연령대가 섞여 있으니 각자 서있는 곳의 관점을 나누며 서로 넒어지고 깊어지는 게 아닐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니가 옆에 있어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는 고백을 서로의 얼굴에서 읽어낸다. 정말이지 우리에겐 서로의 체온이 필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다’간 간혹 길을 잃게 되는 게 현실이니 말이다.
박어진/ 자유기고가
behappym@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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