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01.09 18:07
수정 : 2007.01.09 18:07
|
박어진의 여성살이
|
박어진의 여성살이 /
친정 아버지의 6주기 제삿날인 토요일 오전. 남편과 아이들을 채비시켜 분당 친정집으로 갔다. 친정 엄마와 올케는 이미 잡채와 나물준비에 돌입해있다. 남동생은 부침개 프라이팬 앞에 좌정, 고기전과 동태전에 계란 노란물과 흰물을 입힌다. 손이 많이 가는 부침개와 산적 담당이다. 대학생 조카와 고딩 내 아들도 청소기와 막대걸레를 맡아 대청소를 쓱싹 해낸다. 모두 각자의 역할로 떠들썩한 오후.
저녁 무렵, 하루 일을 끝낸 언니와 두 여동생이 아이들과 도착, 제사가 시작된다. 유일한 아들인 남동생이 제주이긴 하나 태어난 서열 순으로 각 가족이 술을 올리고 절을 한다.
이번 제사의 하이라이트는 언니가 읽은 추도의 글. 큰 딸로 태어나 8살 때까지 아버지의 무릎 위에 앉아 놀았던 감회와 말년 아버지에 대한 차가운 냉대 사이, 죄송스러움을 견디지 못해 며칠 전 쓴 글을 읽는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노래, ‘바위고개’를 부르고, 셋째 딸과 넷째 딸이 부르던 ‘미류나무 꼭대기’와 ‘울산 큰애기’까지 곁들인 15분간의 드라마, 모두 눈물콧물을 찍어낸다. 젊은 날 한쪽 눈 실명의 장애에서 비롯한 내성적 성격과 훗날 우리들의 사춘기 시절 실직으로 인해 무능한 가장의 죄책감에 짓눌렸던 아버지. 그를 이제야 한 약한 인간으로 회상할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성장한 것일까?
언니의 낭독은 초딩과 중딩 손주들에게, 제삿상에 놓인 사진 속 존재일 뿐이던 외할아버지를 살아 숨쉬며, 울고 웃던 한 인간으로 느끼게끔 도와준 것 같다. 제사 후 밥상 머리, 처형의 프리젠테이션에 필 꽂힌 내 남편이 다음 제사 땐 프로젝터로 의미있는 가족 사진 몇 컷을 보며 가족변천사를 돌아보자는 제안을 한다. 아, 지금 이 순간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계실 것 같다. 생전처럼 그저 빙긋, 마구 떠드는 우리를 바라보시며. 음복이 끝난 후 형부는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에 앞장선다. 내 남편은 준비해 온 중력 가속도 측정 센서들을 인터페이스로 노트북에 연결시켜 조카들에게 미니 물리학 실험 세션을 제공한다. 생뚱맞지만 모두 모일 기회가 그리 많지 않으니 엔터테인먼트와 정보교환이 이뤄지는 모둠이 된 것.
유산을 남기지 않아 자식들간 재산분규의 여지를 원천봉쇄하신 아버지의 빛나는 업적으로 5남매는 화목하다. 대신 살짝 게으른 유전자를 단체로 상속한 우리들, 즐겁고 소란스럽게 한 세상 살아가는 게 이제 아버지께 할 수 있는 효도일 것 같다.
박어진/ 자유기고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