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경희대 연극영화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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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겸 연출가 이영란씨 ‘15년전 1연극’ 잇기
히스테리·성형·난자채취 등 몸 수난사 되짚어
무대 위에 불이 켜지면 극장 안은 하나의 거대한 자궁이 된다. 배우는 홀로 연극을 이끌어가며 진통을 겪는다. 그는 인어공주가 되었다가, 마녀가 되었다가, 교수가 되었다가, 결국 그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한 몸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성의 몸이 곧 우주임을 선언하는 무대 위의 여사제, 그가 바로 이영란(경희대 연극영화학 교수)이다.
배우 겸 연출가인 그가 99회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1인극 무대에 다시 오른다. 한국와이더블유씨에이(YWCA)와 (사)문화미래 이프가 함께 마련한 연극 <히스테리아-자기만의 방 2007>(3월2일~18일, 상명아트홀 1관)을 통해서다. ‘히스테리아’라는 단어의 어원은 자궁이다. 연극은 ‘몸 박사’ 닥터 리가 여성의 히스테리, 성적 욕망, 임신과 출산, 난자채취의 문제, 성형, 거식증 등의 문제들을 토크쇼와 강연극, 퍼포먼스 등으로 풀어가는 형식이다.
17일 대학로 극단 목토 연습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관객들에게) 잘 ‘먹힐’ 수 있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그는 연기와 연출을 함께 맡았다. 1인극 무대에 서는 것은 5년만이다. 무엇보다 그 자신 한국 여성주의 연극의 문을 연 버지니아 울프 원작 <자기만의 방>(1992)을 잇는다는 부담이 클 법도 하다.
“15년 전 그때 제 안엔 여성으로서 절규와 갈증이 똬리를 틀고 있었어요. 미국 뉴욕대에서 공연학 공부를 한 뒤 귀국했지만 일자리는 불안했고, 가난했고, 아이는 어렸고… 어려움이 목에까지 차올랐죠.”
그를 비롯한 여성문화예술기획 이혜경 대표, 언론인 유숙렬, 전 이화여대 신학과 현경 교수(현 유니언신학대학원) 등 “가난하고 열정만 있는” 30대 여자들이 모여 <자기만의 방>을 만들었다. “치열하게 토론하고 울고 서로 물고뜯은 결과”로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6만여명의 관객을 끌어모아 공연을 기획한 여성문화예술기획은 제대로 된 사무실을 얻었고, 이 교수 또한 ‘배우 이영란’을 한국 사회에 호명했다.
“분노에 찼던 초연 때와는 달리 한판 놀면서 얘기하자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엔 계몽, 교육, 강요, 주입, 주장이 없어요. 합의를 이끄는 셈이죠.”
초연 때는 김지하, 김용옥, 마광수 등 이른바 ‘잘 나가는 남자’들의 남성중심적 시각을 날서린 어투로 질타했다. 그만큼 “날 것의 이야기”였다. 이번에는 여성의 몸을 지배하는 성별 구조에 대한 비꼬기, 희화화 또는 여성 비하의 역사 되짚어보기 성격이 강하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옛날에는 짐승 같은 열망에 가득 찬 자궁이 여자의 온 몸을 구석구석 쏘다닌다고 생각했대요. 이 돌아다니는 자궁이 바로 히스테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는 ‘한국 여성’으로서 ‘몸’에 대한 수련과 성찰을 거듭해온 배우다. 4살 때부터 춤을 췄고(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87년부터 태껸과 수벽치기를 수련해온 무예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 성정치학의 문화적 재연을 맡아 연출가(<안티미스코리아 페스티벌> <대한민국 여성축제>)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배우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희생적인 어머니(영화 <꽃잎>, <태극기 휘날리며>), 성매매여성(영화 <세라진>), 비구니 스님(연극 <그것은 목탁구멍…>), 페미니스트(연극 <자기만의 방>), 이지적인 여교수(문화방송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를 넘나들며 자기 안의 여성들을 수없이 불러내왔다.
“배우와 연출가는 ‘우주성’이 있어야 해요. 일상의 모든 매듭을 건드릴 수 있어야지요. 예전에 제 힘은 허무주의에서 나왔기 때문에 일상 밖에서만 살고, 숨쉬었어요. 50살이 넘으니까 이제 편안하게 숨을 쉴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의외로 ‘벌써’ 그는 죽음이란 화두를 꺼내들고 있었다. “이제 몸에 담긴 혼을 만나고픈 시기가 된 것 같고 자연스레 죽음에 대해서도 궁구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자기만의 방> 3부작 완결편인 ‘혼’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02-3676-3301, http://blog.naver.com/hysteria2007)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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