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새벽 1시께 경기도 파주시 성매매 업소 밀집지역인 ‘용주골’ 골목 한 업소에서 한 여성이 노출이 심한 옷차림으로 서성거리고 있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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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매매특별법 6달 …세 여성의 서로 다른 삶 지난해 9월23일 발효된 ‘성매매 처벌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된 지 6개월이 지났다. 경찰의 집중단속과 업주들의 반발로 큰 파문이 일어난 가운데 50만명으로 추산되는 성매매 여성들은 지난 반 년을 어떻게 보냈을까? 특별법 시행 당시 업소에서 일했던 세 여성으로부터 그들이 겪었던 서로 다른 삶을 들어봤다. 밀린임금 청구했다가 포주에 폭행 당해
일자리 찾는곳마다 퇴짜…허드렛일 연명
적은보수 힘든일 적응못해 석달 만에 다시 #1 포주 학대를 받다 탈출한 윤소진씨=경기도의 한 성매매 업소 밀집지역에서 일하던 윤소진(25·가명)씨는 이달 초 성매매 업소 탈출에 성공했다. 지난 3년 동안 성매매로 밥벌이를 했던 윤씨는 지난해 10월 중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성매매 특별법 반대 시위에도 참가했다. 시위는 포주들에 의해 조직된 것이었지만, 윤씨도 시위에 어느정도 동조를 했기 때문이다. “당장 돈을 못 버니까 항의하고도 싶었어요. ‘삼촌’(포주)들은 ‘여성부랑 여성단체들도 너희들을 이용한다. 텔레비전 인터뷰에 나오는 아이들도 다 대본을 그대로 읽는다’고 언론을 믿지 말랬어요.” 특별법 시행 초기, 일이 없던 윤씨와 동료들은 포주와 함께 동해안 여행도 가고, 집회에도 참석하며 한 달을 보냈다. ‘삼촌’은 떠나려는 여성들에게 “조금만 버티면 단속이 다시 뜸해질 것”이라며 회유하다가도, “경찰에 잡혀가도 너희들을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말, 포주가 말한 대로 다시 업소의 불은 켜졌고, 여성들은 정문으로 손님을 받기 시작했다. 포주들은 ‘경찰이 단속이나 큰일이 있을 때 미리 알려준다’고 자랑까지 했다. 하지만 장사는 예전 같지 않았다. 부모님에게 돈을 마련해주기로 약속을 했는데 돈이 벌리지 않았다. 포주에게 ‘일을 그만두겠다’며 밀린 임금 등 5천만원을 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포주는 차일피일 미루며 돈을 주지 않았다. 결국에는 포주가 “죽여버리겠다”며 윤씨와 친구를 때리고 흉기로 위협까지 했다. 친구는 흉기에 몸을 베이기까지 했다. 윤씨와 친구는 그제서야 포주를 경찰에 신고했다. 20일 만난 윤씨는 앞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봉사를 하겠다’는 꿈을 다지고 있었다. 그는 “성매매인 줄 알고 들어온 여성도 포주의 학대까지 알고 오지는 않는다”며 “여성단체말고는 성매매 특별법 시행 이전에 우리가 맞아죽든 말든 관심이라도 있었냐”고 되물었다. #2 일자리 찾아 전전하는 김아정씨=10년 동안 성매매 생활을 한 김아정(35·가명)씨는 지난해 12월 전남 쪽 광주의 한 업소에서 탈출했다. 그러나 그를 반겨주는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고졸인 그는 처음에는 사무직에 들어가려고 몇몇 회사에 지원했다. 그러나 컴퓨터기술이 없어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다. 나중에 어렵사리 한 회사에 취직했는데, 알고 보니 다단계 판매회사였다. 그래서 열흘 만에 그만뒀다. 김씨는 ‘눈높이’를 낮췄다. 주유소와 편의점, 커피숍 등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봤다. 그러나 이곳도 그를 반기지 않았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막노동’ 쪽으로 방향을 틀 수 밖에 없었다. 생계 유지를 위해 식당 설거지, 창고 물건 나르기, 전단 돌리기 등을 닥치는 대로 했다. 하지만 몸이 약한 그로서는 이마저도 힘들어 한 번 일을 하고서는 며칠씩 쉬어야 했다. 19일 서울에서 만난 김씨는 “구직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며 “여전히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고 눈물을 훔쳤다. 그는 “30대 중반 여성이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정신과 치료 등을 받으며 허드렛일 자리를 전전하고 있으나,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틈틈이 목걸이·귀걸이 등을 만드는 구슬공예를 배워 창업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3 업소로 다시 돌아간 안송이씨=경기도의 한 룸살롱에서 일하는 안송이(24·가명)씨는 지난해 9월 성매매 업소를 탈출했다가 석 달 만에 다시 업소로 돌아갔다. 법 시행 초기, ‘기회다’ 싶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다 결국 업소로 돌아간 것이다. 안씨는 “울고 나간 친구들도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어차피 집이 너무 가난해서 부모님 버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도 힘들고, 또 업주들이 하루 한번씩 전화해서, ‘언제 올거냐’ ‘어차피 망가진 거 돈이나 벌어라’ 이렇게 유혹하니까 다시 오게 된다”고 말했다. 안씨는 “구직 노력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인정하면서도, “룸살롱에서는 적어도 한 달에 200만원은 버는데,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를 하면 100만원도 못 받아 적응하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룸살롱은 업소 밀집지역과 달리 술은 많이 먹지만 하루밤 여러 사람을 상대하지 않아 그나마 낫다”며 “성매매도 나중에는 어차피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돈을 벌면 아이스크림 가게를 내는 것이 희망이다. 그가 일하는 업소에는 지난해 9월 말 당시 35명 정도의 아가씨가 있다가 한때 10명 안팎으로 줄었으나 다시 25명으로 늘어났다. 안씨는 “전에는 손님이 열 테이블 오면, 여덟 테이블에서는 2차를 나갔는데 돌아온 뒤에는 4~5개 테이블밖에 없다”며 “손님들이 처벌이 두려워서인지 많이 꺼리고, 카드 결제도 꺼려 성매매 자체는 줄어들었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서수민 길윤형 기자 wikka@hani.co.kr %%990002%%
홍등가 안 상담행렬‘불 켠 희망’ ● 옐로우하우스 작지만 큰 변화 탈성매매 시범구역 60명중 40명 상담소에
20명은 정기방문 생계·의료지원도 점증 “탈성매매를 위한 ‘100년 전쟁’을 이제 막 시작했을 뿐입니다.” 지난 18일 밤, 인천 숭의동 성매매업소 밀집지역인 속칭 ‘옐로하우스’는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불 꺼진 10여개의 성매매업소가 성매매 특별법 시행 뒤 위축된 상황을 짐작하게 할 뿐, 네온사인이 현란한 20곳의 성매매업소 앞에서는 여전히 성매매 여성들과 그들을 사려는 남성들이 휘청대고 있었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부산 완월동 지역과 함께 ‘탈성매매 프로젝트 시범지역’으로 선정한 이곳은 겉으로 보기에 다른 성매매업소 밀집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밀집지역 안에 자리잡은 현장상담소 안에서는 ‘작지만 큰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성부가 지난해 12월 설립한 이곳에서는 인천 여성의 전화 소속 활동가 5명이 상담, 긴급생계비 지원, 의료·법률 지원은 물론 직업교육과 창업자금 대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활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배임숙일 인천 여성의 전화 회장은 “이 지역 성매매 여성들에게 탈성매매가 가능하고, 이를 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 1차적 목표”라며 “60여명의 여성 가운데 3분의 2 정도가 현장상담소에 들른 적이 있고, 3분의 1 정도는 정기적으로 상담 등 지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탈성매매 의지가 확인된 여성들은 한달에 4차례 이상 상담 받는 것을 조건으로, 6개월 동안 한달에 40만원씩 긴급생계비를 지원받는다. 또 이 가운데 성병, 위염 등 지병을 앓고 있는 여성들은 최대 300만원까지 의료비를 지원받고 있으며, 빚 문제로 고민하는 여성들은 350만원까지 법률지원을 받고 있다. 미용, 애견미용, 애견관리 등 직업훈련도 이뤄진다. 하지만 배임숙일 회장은 탈성매매 여성 수 등 구체적인 성과를 거론하는 것은 “아직 시기적으로 이르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탈성매매 사례와 성과들이 공개되면 업주들이 현장상담소를 찾는 여성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수 있고,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성매매 여성들이 자칫 현장상담소를 향한 발길을 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옐로하우스 현장상담소의 한 상담가는 “탈성매매를 위한 ‘100년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며, 벌써부터 큰 성과를 기대하다가는 자칫 전쟁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며 성급한 성과주의를 경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범사업의 성과는 여성부 통계 등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연인원으로 집계했을 때 지난해 11월26일부터 올해 2월28일까지 부산과 인천 두개의 시범사업 지역에서 2259명이 탈성매매를 위한 상담을 받았다. 이 가운데 탈성매매 의지가 확인돼 긴급생계비를 지원받은 여성은 516명이었으며, 의료 및 법률 지원을 받은 여성은 각각 402명과 9명이었다. 직업훈련을 받은 여성도 60명이나 됐다. 인천/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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