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여자만세!”우리나라 최초의 ‘빅 위민 패션쇼’무대에 오를 모델들. 왼쪽부터 전강미, 남선희, 반가이, 이수연, 전혜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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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위민 패션쇼’‘빵빵한 모델’들의 이야기 보따리
다음달 9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 빌딩에서 패션쇼가 열린다. 이 무대에 빼빼 마른 모델은 설 자리가 없다. 모델은 1명 빼곤 모두 80㎏을 넘고 77사이즈 이상의 옷을 입는다. 한국여성재단이 문화나눔사업으로 여는 ‘2005 코리아 빅 위민 패션쇼’. 말 그대로 ‘통 큰 여자’들을 위한 잔치인 셈이다. 실력으로 인정받는 재즈 뮤지션 윤희정씨와 그의 딸 김수연(버블시스터즈 멤버)씨가 초대손님으로 참여해 처음부터 끝까지 ‘빅 우먼’들만의 무대가 만들어질 계획이다. “너도 아프냐”“신부가 뚱뚱”충격 수모
“난 자신있고 당당…이상한 건 사람들”
“쇼 준비하며 본연의 내모습 찾게됐다”
%%990002%% 여성재단 기부자인 (주)큰옷과 율리아나 미용실 관계자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지난주엔 200여명의 지원자들 가운데 면접을 통해 20여명을 뽑았다. 공연기획자인 박진창아씨는 “참가자들이 모두 끼가 넘쳐 선정에 애를 먹었다”며 “외모지상주의에 주눅들고 소외된 여성들이 아닌, 자신의 진짜 아름다움을 찾는 이들을 위한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 앞서 ‘패션모델’들은 지난 19~20일 경기도 양평에서 워크숍도 마쳤다. 한의사 이유명호씨는 이 자리에서 “몸집이 크다고 모두 건강에 나쁜 것은 아니고 큰 여자들은 지방뿐 아니라 근육도 붙기 때문에 힘이 세다”며 “연약하고 힘없는 여자를 선호하는 사회의 시선을 극복하라”고 충고했다. 참가자들은 “개인의 장점을 제쳐두고 외모로 먼저 재단하는 사회에 기죽고 싶지 않다”고 했다. ‘뚱뚱한 여자’라는 비난을 넘어 ‘통 큰 여자’가 되는 길 위에 선 그들을 21일 만났다. 전강미(주부, 33, 두 아들의 엄마):고등학교 때 교회 청년부 모임에서 어떤 오빠 한명이 “성격 나쁜 여자는 두들겨 패서 고치면 되지만 뚱뚱한 여자는 돈 많이 든다”고 해 충격받았다. 결혼식 때도 신부가 뚱뚱하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남편은 남의 시선에 기죽지 말고 당당해지라며 늘 충고한다. 반가이(재정안정설계사, 27, 미혼):여동생이 결혼하기 전에 “먼저 치우겠다”면서 엄마가 살 빼라고 스트레스를 준다. 남자들 왜곡된 시선이 특히 심각하다. 미팅 나갔는데 남자가 “충고 하나 하겠다, 운동 좀 하셔야겠다”고 하더라. 나도 “정장에 흰양말 신지 말라”며 맞섰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이 나빴다. 옷가게에 가면 점원이 “언니한테는 안 맞아요” 한다. 이수연(22, 분장사):일하러 가는데 아파서 택시를 탔다. 도착해서 택시문 닫는 순간 기사가 “살 좀 빼요!” 하더니 가버렸다. 황당하고 폭력적이었다. 정혜련(23, 유도 전공 학생):서러울 때가 있었다. 유도연습을 하는데 아파서 쉬겠다고 했더니 남자 선배들이 “니가 아퍼?” 하면서 크게 웃었다. 교수님도 “들어가 운동해!” 했다. 어쩔 수 없이 한 뒤에 집에 와서 끙끙 소리까지 내면서 앓았다. 전강미:고3 때 한약 먹고 한달에 12㎏ 뺐다. 하루에 방울토마토 20알, 삶은 계란 2개, 한약, 기름기 없는 고기 조금을 구워먹었다. 첫 애 낳고 살이 붙어 8㎏이 그대로 남았다. 스스로 주눅이 들고 스트레스 받았다. 남선희(19, 학생):고3 때 운동 하루 3시간 하고 한달 동안 8㎏ 뺐다. 그 뒤에 15㎏ 더 쪘다. 요요현상이 무섭다. 반가이:안 해본 다이어트 없다. 운동, 약, 지방제거주사, 경락마사지도 받았다. 다이어트 식단대로 하면서 10여㎏을 뺐다. 그 뒤에 부작용 심했다. 진맥을 받아보니 “기가 다 빠졌다”고 했다. 2년 동안 감기를 24번 앓았다. 채식주의자인데도 살이 찐다. 정혜련: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내가 고기 좋아한다고 하면 “고기 좋아한다는 여자 첨 봤다”고 비웃는다. 전강미:우리가 지나가면 다 쳐다본다. 이번 패션쇼 보고도 비웃는 사람들 있을 거다. 워크숍 취재왔던 방송국 피디도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다가 우리 보고 너무 당당하고 잘 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게 바뀌길 바란다. 우리는 건강하다. 품이 넓고 마음이 넉넉하다. 남에게 상처주지 않는다. 이건 중요한 성품이다. 통 큰 여자들의 재미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반가이:이번 패션쇼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어깨에 날개가 펴진 것처럼 당당하고 멋있어졌다. 옷입는 것도 달라졌다. 이제 화려한 색깔의 타이트한 옷도 입게 됐다. 나는 열심히 일하는 사회인이다. 나도 모르게 자신을 사각지대에 넣고 있었다. 본연의 내 모습을 찾겠다. 벌써 인터넷에 통 큰 여자들 까페를 만들었다. 77사이즈 이상 입는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다. 우리끼리 물물교환 장터도 하고, 세미나실을 빌려 행사도 열 계획이다. 정혜련:뚱뚱하면 어때? 단점 없는 사람은 없다. 엄마는 늘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한다. 나는 늘 자신감 있고 당당하다. 끼도 많다. 약간 불편한 것 빼고 나쁜 게 없다. 문제가 있다면 내가 아니라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닐까?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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