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양육과 평등가족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빠가 늘고 있다.
|
“아이 키워보니 진짜 힘들어”
“내가 좋아 택한 일” 만족도 실직한 아빠가 아이를 키운다는 텔레비전 드라마 <불량 주부>가 인기다. 이 드라마의 인기가 보여주듯, 아빠들의 육아참여 역시 이젠 드문 일이 아니게 됐다. 지난 9일 서울 여성플라자의 한 강의실. (재)서울여성의 자녀양육 지원공간인 ‘별난 놀이터’가 연 부모교육 첫번째 시간이었다. 놀랍게도 참석자 가운데 절반이 30~40대 아빠들이었다. 70명을 대상으로 한 강좌에 130명이 몰려 주최쪽은 강의 중간중간에 책상과 의자를 계속 늘려야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김장섭(42·남·사업)씨는 “아이와 잘 지내고 싶은데 경상도 남자라 무뚝뚝한 데다 아이 다루는 법을 잘 모르겠다”며 “가정의 평화를 위해 강의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사로 나선 양용준씨(전 하늘땅 어린이집 부모 대표·(주)카모드 이사)는 아이 키우기의 즐거움과 평등가족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양씨는 뜻하지 않은 실직으로 1년 동안 전업주부로 생활했던 두 아이의 아버지. 이 때 아이 키우기를 전담하면서 ‘살림’의 중요성과 부당한 성별분업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아이 함께 키우기’가 평등 가족을 실현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이를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하는 일들은 모두 음식만들기, 빨래, 청소 등의 ‘살림’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는 “살림은 아이들을 키우고 사람이 살기 위해 기본적으로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며 “가정에서 육아를 함께 하며 양성평등을 실천하는 일은 공동체 의식에서 출발한, 작은 공동체를 실현하는 과정”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공동육아로 아이들을 키운 뒤 지금껏 집안일을 나눠 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한 듯 보였다. “회사일에 매진했다면 사회적으로 더 성공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만 아이 키우기는 내가 좋아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다. %%990002%%육아·가사 기꺼이 나누는 삶
“무심한 아빠는 집안의 왕따” 양씨의 사례처럼 실직 등으로 전업주부가 된 이들이 아니더라도 아이 키우기를 함께 하려는 아빠들은 점차 늘고 있다. 내로라 하는 ‘열성 아빠’ 박좌용(00·출판사 근무)씨도 비슷하다. 그는 아내의 산후조리부터 손수 챙겼다. “내 피붙이를 낳아준 사람에 대해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터였다. 임산부에게 좋은 음식을 만들어 아내에게 먹였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즈음부터는 보육시설에 관심을 뒀다. 끝내 관심있는 이웃 사람들을 모아 공동육아 어린이집까지 직접 만들었다. 아이 때문에 담배를 끊은 것은 당연지사. 이젠 시장에서 찬거리를 사와 밥상을 차리는 일도 익숙하다. 아이를 맡길 데가 없으면 직장 회식자리에도 데려간다.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아이를 아빠가 맡는 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는 “퇴근해도 반갑게 달려오지 않는 아이들을 성토하는 아빠들이 있다면 그건 본인이 자초한 것”이라고 한다. 아이와 유대감을 형성하지 않은 아빠는 자연스레 집안의 ‘왕따’가 된다는 얘기다. 최근 육아일기 <울지마 다빈아>(들마루)를 펴낸 손영철(35)씨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손씨는 “자식이 클 때 무관심한 아빠는 세월이 흐른 뒤 무관심을 되돌려받게 돼있다”고 했다. 손씨는 산후우울증 탓에 결혼생활을 계속할 수 없다며 결별을 선언한 아내를 보낸 뒤 생후 3주 된 젖먹이를 혼자 키우게 됐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갓난 아이를 데리고 거리에 나갈 때마다 “아이 엄마는 어딨나” “외할머니나 친할머니는 뭐하고?”란 말을 곧잘 들었다고 했다. 그는 “남편들의 육아참여를 촉구하는 얘기를 듣기 싫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이 정말 쉽지 않다”며 “바깥 일도 힘들겠지만 아빠들이 아이돌보는 일에 지금보다 200%는 더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990003%%
아빠들의 호응에 (재)서울여성은 가족공동체의 다양한 모습을 알려주는 행사들도 앞으로 좀더 자주 마련할 예정이다. 박진수 교류지원부장은 “가족이란 공동체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한부모가족, 국제결혼가족에 대한 사진전과 아빠 밴드의 음악회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프로그램들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