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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5.06 13:19 수정 : 2005.05.06 13:19

일본 시나가와 구립 연장야간보육원 보육원 시설의 0-1세의 어린이와 보모. 도쿄/이종찬기자 rhee@hani.co.kr



[생활의발견]5. ‘출산을 앞두고’
내가 ‘산전우울증’에 시달리는 진짜 이유

출산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 만나는 사람마다 묻는 말이 한 가지다.“언제가 예정일이냐?” 배와 허리, 사타구니 등이 쑤시기 시작한다. 앞으로 태어날 아기가 ‘건강할지’, ‘어떻게 생겼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당장 몸이 불편하니 빨리 아이가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러나 출산을 먼저 경험한 선배들은 “그나마 애가 뱃속에 있을 때가 더 편해. 여행도 많이 다니고, 영화도 많이 보고, 맛있는 것 많이 먹으러 다녀. 애 생기면 아무 것도 못한다”며 은근히 겁을 줬다.

‘진퇴양난’. 낳아도, 뱃속에 있어도, 여성에게는 고민과 고통이 뒤따른다는 얘기다.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출산휴가 3개월 동안은 그렇다 치더라도, 회사에 복귀한 뒤 아이를 키우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앞선 걱정일 수 있겠지만,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모두 ‘양육 불가’를 선언한 상태라 마땅한 곳을 찾아야 한다. 돌도 채 되지 않은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길 생각을 하니, 내 신세가 처량해졌다.

물론, 요즘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원더풀 라이프>, <굳세어라 금순아>, <불량주부>만 봐도 육아 현실과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의 경제활동 병행이 어려운 일임을 보여주고 있지만,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느낌이다. <원더풀 라이프>는 경제력이 든든한 시댁이 육아 문제의 해결책이었지만, 정작 대학생 부모가 겪는 어려움은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육아 때문에 여성이 경제활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줬지만, 시댁의 경제적 뒷받침을 받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불량주부’의 경우 여성의 경제활동을 다루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라는 점이 달랐다.

실제 ‘미디어세상 열린 사람들’은 지난달 22일 발표한 모니터 보고서에서 “정부의 출산장려책이 나올 만큼 힘든 육아 문제가 출산율 저하로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시대를 대변하는 드라마가 단편적인 현상에만 머물고 있는 한계를 벗어나 육아가 가족과 사회의 공동책임이라는 인식 속에서 접근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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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 어떻게 키워?? 여성만 죽어라 고생하라고?”

임신 관련 책을 보면, 많은 여성들이 출산뒤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 등으로 ‘산후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난 반대였다. 오히려 임신 후기인 지금, 스트레스가 더욱 심해졌다. 남편이 곁에 있을 때면 짜증을 냈고. 제 풀에 지쳐 눈물을 쏟기까지 했다.

“애 어떻게 키워? 누구한테 맡기냐고? 목도 못 가누는 애를… 모유수유도 못할 거 아냐?”
“맡길 곳만 찾으면 내가 오전에 맡기고, 퇴근 후 찾아오는 것 다 할께.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할께.” 그나마, 제 욕심 차리지 않는 남편이 위안이라면 위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한국의 많은 남자들. 아이만 만들어(?) 놓고, 출산과 육아에선 피해버리기 일쑤다. 임신·출산“육아는 전적으로 여성의 몫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전업주부뿐 아니라 맞벌이하는 엄마도 마찬가지다. 대개의 남편들은 출근 전후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고 데려오는 일, 휴일이나 연휴에 아이를 돌보는 일에서 한발 비켜서 있다. 특히 남편과 아내의 회식이나 야근, 동창회 등 친목모임이 겹치는 날이면, “나 오늘 약속 있어. 당신이 데려와!”라며, 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가정내 현실이 ‘애 있는 여성은 퇴근시간만 되면, 총알같이 튀어나간다’, ‘회식자리는 매일 빠진다’는 직장 동료들의 불만을 낳게 만드는 진짜 원인이다. 여자라서 회식이 싫은 게 아니다. 남자들이 일을 마치고 대화와 음식으로 회포를 풀러갈 시간에 똑같이 하루를 일하며 피곤하게 보낸 여성은 다시 제2의 일터로 급하게 달려나가야 하는 현실이다.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아. 아이 키우는 문제에 있어서, 아내인 나의 희생만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려면, 양육의 책임이 남녀 모두에게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겠지. 남편만 사회 생활하는 것 아니고, 남편만 친구나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난 몰라. 네가 알아서 해’라고 할 때면, 속상해 죽겠어.”(홍아무개씨·31·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여성 고용률 높으면 출산율 오른다!”

어제(5월5일)도 ‘저출산 고령화 해결대책’이 발표됐다. ‘이민 수용 검토’. 허를 찔렀다. 어쩜 이리도 모를 수가 있을까. 여성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혹은 지금까지 나온 각종 통계지표만 봐도, 원인과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 텐데… 한심하다는 생각부터 나왔다.

조영택 국무조정실장이 밝혔듯, 정부는 “현재의 저출산은 여성의 사회활동 증가, 경제적 사정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결혼 기피나 기혼자들도 아이를 낳지 않는 쪽으로 사회풍조 자체가 바뀐 측면도 있다”며 “출산장려나 보육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어 선진국처럼 이민을 받아들이는 방안도 합리적일 수 있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때 “국적과 관련된 이민정책도 신중히 검토,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민 수용은,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선호하는 금융, 아이티(IT) 등 고급인력 분야에 이민자들이 몰릴 경우 자칫 또 다른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저출산 극복대책과도 전혀 맞지 않는 제안이다.

“여성 고용률 높은 국가가 출산율도 높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높아져 출산율이 낮아졌다는 사회통념과 달리 선진국의 경우 일하는 여성이 많은 나라일수록 출산율도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달 10일 <노동리뷰> 4월호를 통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여성 고용률과 출산율을 비교 분석한 결과, 아이슬란드·노르웨이·덴마크·핀란드 등 25∼54살 여성 고용률이 높은 나라는 출산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여성 고용률이 가장 높은 아이슬란드는 여성 1인당 출산율도 미국, 아일랜드에 이어 세 번째로 높았다. 또 여성 고용률이 80% 이상인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의 경우 여성 1인당 출산율이 OECD 회원국 평균치(1.6명)를 웃돌았다.

반면 같은 OECD 회원국이라고 해도 한국을 비롯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여성 고용률이 낮은 나라는 출산율도 낮았다. 한국의 출산율은 2004년 기준 여성당 1.19명으로 체코와 함께 30개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29위)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25∼54살 여성 고용률(57.7%)도 터키, 멕시코,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과 함께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노동연구원이 “일하는 여성이 많은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높은 것은 양육 지원, 근무시간의 유연성, 개인기반 조세 시스템 등 취업 여성을 돕는 정책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는 사실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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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행되고 있는 모성보호법이 제대로 현장에 적용만 되어도…”

아니,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모성보호법이 현장에 제대로만 적용만 되어도 좋겠다.

임신해서 회사 눈치 안 보고, (법대로) 임신기간과 출산 후 1년 동안 야근 및 휴일근무 빠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3개월 출산휴가 외에 출산 후 1년간 쓸 수 있는 육아휴직을 낼 수 있는 용기(?)있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봤다. 공무원 등을 빼고는 주변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시행되는 법이나 제대로 지켜졌으면 해. 정부는 그런 것은 감시 안하나 봐. 많은 회사는 여전히 ‘임신=해고’라고 압박을 줘. 출산휴가 쓸 수 있고, 출산 뒤 회사에 복귀할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니까!”라며 은근히 날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실제 지난해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로 접수된 여성 노동 상담 516건 가운데 생리, 임신, 출산에 관련한 상담으로 23.6%로 가장 높았고, 임신출산으로 인한 지방 발령, 해고 등 고용한 불이익 관련 상담이 52%를 차지했다. 특히 전체 성차별적 해고 상담 중 70%를 차지하는 비율이 임신, 출산으로 인한 해고로 나타난다는 점은 현행법이 노동현장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임신은 해고’라는 기업의 불평등한 고용관행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현실에서 출산율이 높아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또 지난 2월 중앙고용정보원의 분석결과를 보면, 2003년 출산해 같은 해 출산전후 휴가를 사용한 근로자는 3만4천841명이며, 이 중 지난해 말까지 육아휴직을 쓴 근로자는 전체의 22.7%인 7천912명이었다. 출산휴가를 쓴 여성 중 육아휴직을 한 경우가 5명 중 1명꼴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서울디지털대 황인태 교수가 기혼 직장여성 835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1.0%가 ‘육아휴직제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답했으며, 이 가운데 51.4%는 ‘회사에서 육아휴직제를 쓸 수 없다’고 대답해 이 제도가 기혼 직장여성들에게 사실상 ‘빛 좋은 개살구’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임신-출산-육아를 바라보는 기업의 의식변화와 정부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선행되어야 하는 이유다. 번지르르한 대책보다는 시행되고 있는 법이 현장에 제대로 적용되도록 하는 일, 그것이 예산이 덜 들고 효과도 큰 문제 해결의 지름길이 아닐까.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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